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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Sep 12. 2024

오~ 마이 갓! ~~

(제 갓을 지켜주세요!)

지난여름..

한국 나들이에 들떠있던 아이들은 싱가포르 만만치 않게 무더운 한국의 여름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훨씬 더 더웠다가 맞는 표현이었을 정도..

"열대우림 기후에서 살다 왔는데 왜 한국이 더 덥죠?"


그저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아름다운 한국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숨 막히는 무더위에 찾아간 첫 장소가 경복궁이었으니..

"어머나~ 얘들아 이것 좀 봐~ 너무 아름답지? 어머 저것도 봐야 해~~"

어릴 때 와봐서 기억이 안 난다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자꾸만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런 내게 다가와 슬쩍 손 잡아주며 웃어 보이던 아이들.. 

'너무 큰가?'

그렇게 잠시 숨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평일 낮 시간이었는데도 궁궐 안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랜만의 궁궐 나들이에 이미 아이들보다 더 신나 버렸으니 커진 목소리는 진정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엔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곱디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와 ~~ 쁘다. 우리도 한복 빌려 입을까?"


화사하고 아름다운 한복을 차려입고 곱게 머리를 땋거나 어여쁜 장식을 한 모습을 보니 눈이 절로 돌아갔다. 그뿐인가.. 곳곳에 임금님이.. 세자가.. 장군님이 즐비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 한복이 이렇게나 곱고 아름답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한복을 입고 궁궐을 거니는 모습에 많이 놀라워했다. 더위도 견뎌가며 우리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그들이 괜히 고맙고 더 예뻐 보였다.


"아.. 엄마, 내 친구 인스타의 사진이 여기서 이렇게 입고 찍은 거였나 봐요."

싱가포르 친구가 보여준 사진 속 공간을 발견하곤 더 반가워했다. 그럼에도 한복 체험은 아쉽지만 다른 계절에 하고 싶단다. 더운 나라에서 오래 살았어한국 더위에는 적응이 안 되나 보다.


시원한 물길을 따라 걸으면 이 더위가 좀 식혀질싶어 청계천을 구경하며 걸었는데.. 하필 그날이 한국에서도 역대급으로 더운 날이었다는.. 

아이들이 꼭 다시 가고 싶다 노래하던 그곳, 광장시장에 도착했을 땐 너무 지쳐서 원래도 맛있는 음식들이 훨씬 더 맛있을 수밖에.. 그리웠던 마약 김밥, 떡볶이,  빈대떡, 핫도그 등을 허겁지겁 배 터지게 먹었더니 굴러다닐 정도라 소화시키자며 나선 시장 구경..

그곳에서 꼭 사고 싶었던 물건을 발견했다.


"오~~ 마이 갓!~~"

그건 다름 아닌 갓!

한복 가게들 사이에서 보이는 저건 분명 갓이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의 '갓'이 K- 드라마를 통해 알려지면서 싱가포르에서 사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싱가포르에는 <내셔널 하모니 데이>라고,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다인종 국가이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기 위해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등교하는 날이 있다. 그날 한복 위에 쓰고 가면 멋있겠다 싶어 갓을 찾아봤었다.


그런데 그 당시 온라인에서 파는 갓은 우리 고유의 갓 모양이 아니었고, 뭔가 중국스러운 이상한 모양만 보였다. 왜 제대로 된 갓은 안 팔까 아쉽고 궁금했는데 찾아 들어간 상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격!

보기에도 근사한 다양한 종류의 갓을 팔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갓을 담아갈 상자가 마땅치 않다는 거였다. 갓을 담아 보관하는 전통 상자가 있긴 한데 많이 싸고 구하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당연히 해외배송은 더 어려웠을 터..

꼭 사고 싶었던 갓이라 반갑게 샀는데 어떻게 들고 가나 걱정스러웠다. 마음에 쏙 들었는지 막내는 두 손으로 소중히 안고 비행기 타겠다고 했다.


(Photo by 서소시;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아준 갓)


달리 방법이 없다며 검은색 비닐봉지 담아준 갓.. 너무 약한 포장에 망가질까 살포시 안고 비행기에 타서도 조심조심 선반 위에 올려뒀다.

그런데 문제는 환승 시 일어났다.


베트남에서 환승을 하게 됐는데, 공항 검색대를 한번 더 통과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있어 괜찮았는데, 베트남 공항 환승 검색대에는 바구니가 없었다.


갓이 가벼워서 고무로 되어 있는 검색대 입구부터 통과할 수 있을지.. 통과하다 찌그러지진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싱가포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갓을 샀으니 무사히 잘 가져오고 싶었다.


급한 마음에 튀어나온 말이..

"Excuse me, This is Korea traditional hat, . Could you help me save my ?"

(실례합니다. 이건 한국의 전통 모자, 갓인데요, 제 갓을 지키게 도와주세요.)


검색대를 지키고 있던 직원분은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게.. 말하고 보니 이상했다. '제 God(신)을 지켜주세요.'처럼 들렸으려나..

도와주길 바라며 부탁했는데 사무적으로 그냥 올리라고 했다.


역시나 검색대 입구에서부터 통과하지 못한 갓..

간절한 내 마음과 달리 그 직원은 이 담긴 비닐봉지 위에 내 핸드폰을 툭 올렸다. 하나로는 안 통했다. 다시 아이의 핸드폰까지 하나 더 올리더니 쓰윽 미는 게 아닌가.. 

그제야 검색대 입구를 통과했다.

"오 마이 갓~~(아이고 내 갓~~)"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찌그러지지 않고 무사히 통과한 갓!

'귀한 모자라고요..'

그분은 할 일을 한 거지만, 소중히 다뤄 주세요  외치고 싶었다.

타국살이 오래되다 보니 해외에서 구하기 어려운 우리 것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Photo by 서소시: 무사히 싱가포르에 온 갓)


그렇게 집에 올 때까지 막내 손에 아기처럼 소중히 들려 싱가포르에 잘 도착한 갓..

먼 길 오느라 갓 너도 고생했다.

갓 놓고 보고 있자니.. 학교에 쓰고 가 한국의 멋진  자랑할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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