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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Oct 31. 2024

든든한 위로.. 내가 들어 줄게요!

"엄마, 제발 그만 듣고 싶어요!"

결국 또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이고, 내가 또 너 듣기 싫은 이야기를 이러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에 서운함과 당황스러움이 함께 실려 왔다. 다 듣지 못했지만, 이어지지 못한 뒷 이야기들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아버지가 또 서운하게 하셨다고..

평생을 기다려봐도 변하지 않는다고..

서러운 마음이었는데 마침 모처럼 들려온 딸 목소리에 하소연하고 싶으셨으리라. 묵묵히 다 들어드리고 왜 또 엄마 서운하게 하셨냐며 엄마 편들어드리면 될 것을.. 못난 딸인 나는 그걸 다 들어드리지 못했다. 들을수록 엄마를 슬프게 만드는 아버지를 더 미워하게 되니까..


그저 하소연하듯 속에 쌓인 서러움 뱉어내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임을 이제는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속상하다 이야기하시면 그런 속상함의 원인인 이들을 향해 원망과 미움이 쌓여서 내 마음속에 큰 자릴 차지하고 앉아 떠나지 않으니..


그래서 부탁드렸다.

"엄마, 서운하시겠지만.. 늘 멀리 살아서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엄마를 슬프게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그들을 너무 미워하게 돼서 힘들어요. 이젠 그만 듣고 싶어요."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고된 시집살이에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녹녹지 않은 삶의 어려움들 앞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오뚝이처럼 매번 씩씩하게 잘 이겨내신 우리 엄마..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나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지 가늠도 안 되는 혹독한 시간들을 지나오신 엄마..

그런 엄마가 속상하고 힘겨울 때면 이랬었노라 들려주시던  이야기들..

그저 잘 들어드리면서 고생 많으셨다고.. 잘 견뎌오신 시간들에 감사하다고.. 그렇게 들어만 드려도 큰 위로가 될 텐데..


머리로 아는 일이 힘겹기만 했다..

엄마를 대신해 싸워줄 수도 없고 속상함이 원망이 되고 미움이 되었다.

그렇게 매번 마음과 다르게 들어드리지 못하고 그만을 외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른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먼 타지에서 살다 보니.. 어렵고 힘든 일들이 생길 때면 이렇게 힘들고 속상하단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말 아프고 쓰라린 이야기는 하기 어려웠다. 너무 아픈 이야기는 듣는 사람도 나처럼 속상하고 아파할 거 같아 그저 속으로 삼키곤 했다.


이래저래 어려움이 있단 이야기는 해도 정말 마음 아픈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들려주던 아픔들을 들으며 함께 마음 아팠었기에 내 아픔이나 어려움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게 맞는 거라고.. 잘하는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며칠 전, 생일에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읽다가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첫째가 미리 써두었다 동생에게 맡겨놓고 간 편지에 이런 글이 있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너무 고맙고 좋아요. 힘든 일, 좋은 일, 속상한 일 모두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언제든 나에게 기대도 괜찮아요. 내가 이야기 다 들어줄게요!"


아차 싶었다.

안 하려고 해도.. 예전에 엄마가 그랬듯이 아이에게 속상한 일, 잘 안 풀리는 답답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내뱉었나 보다.


마음 가득 커다란 시계추가 진동하며 나를 뒤흔드는 기분이었다.

이 말이 이렇게나 든든한 위로의 말이었구나.

그저 들어준다는 게 아닌 말이었구나.


"아픔도 어려움도 속상함도 함께 나누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내가 아프고 힘들더라도 이야기하는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진다면 그 무거운 마음 같이 나누어 들어줄게요. 당신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가 바라는 거예요."

이런 위로가 들려오는 거 같았다.



어느새 훌쩍 커서 이런 든든한 위로를 건네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겹쳐 보이는 못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든든한 위로를 받고 보니 더 그리워진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 할 거 같다.

그리고 전해야겠다. 들어 드리겠다고..








( 사진 출처 : photo by Harli Mart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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