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사항 Jan 31. 2024

세탁기와 손빨래

개개인의 일상생활이 환경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환경 공부를 시작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전에 인지 못했던 이유는 나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착한 시민인 줄 알고 살았다. 분명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면서 쭈욱 살아가고 있었다.


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 중에서 '의', 그중 세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평소에 입는 옷의 많은 재질이 폴리에스테르, 폴리우레탄, 아크릴이라 불리는 합성섬유이다. 석유, 석탄을 기본 원료로 시작하여 화학적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섬유로 만든다. 눈에 보이는 페트병만 플라스틱이 아니다. 합성섬유는 입고 있는 중에도, 세탁을 할 때에도 섬유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나온다. 어디에서도 걸러지지 않고, 하수처리장을 거쳐 결국에는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우리가 배출한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 구조에 의해서 우리가 먹게 된다. 정말 먹고 싶지 않다.


북극에서도 섬유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배출되는 미세 플라스틱 섬유가 연간 878톤에 달한다고 한다. 네에? 만약 플라스틱 878톤짜리 덩이가 바다에 버려진다면 분명 눈에 보일 텐데 작디작은 크기여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리는 바다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섬유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할까. 합성섬유 대신 면 같은 천연섬유 제품을 입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찬물에 세탁하거나 빨래를 모아서 세탁하는 것도 좋다.


2025년도부터 프랑스에 세탁기를 수출을 하려면 미세플라스틱 필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미세플라스틱 양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우리나라, 왜 정부에서 규제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럴 때는 기업이 먼저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가 세탁기에 이 필터를 부착한 이유는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00 회사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을 오염시키는 것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 사실을 알게 된 현명한 소비자들은 그 기업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이건 그린워싱이 아니다. 필터 부착이 세탁기 가격을 엄청 높일 것 같지는 않다. 순진하게도 내가 기업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ESG가 대세라고 기업마다 난리(?)라는데, 이런 것부터 움직이면 좋으련만. 기업이 알아서 하지 않으면 정부가 필터 부착 규제를 해야 한다. 시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정부 규제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하루에 기본으로 사용한 수건이 5~6장이다. 거기에다 속옷, 체육복, 태권도복까지 있으면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은 세탁을 꼭 해야 한다. 지인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세탁기를 돌린다 하여 깜짝 놀랐다. 수건이 40장이고, 팬티가 14장이라 했다. 아하, 내가 자주 세탁하는 이유는 사용할 수건과 속옷이 필요해서인데, 그 정도 양만큼 구비해 놓는다면 일주일에 한 번 빨래가 가능하구나.


2년 전, 14년 사용한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때는 여름이었는데, 새 세탁기가 도착할 때까지 손빨래를 이어갔다. 동거인과 함께 빨래를 나눠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세탁할 때는 발로 밟을 수 있는데, 헹구고 물기를 짜야할 때는 손목이 아팠다. 예전에 세탁기가 없을 때는 어떻게 빨래를 다했을까? 옛날에 엄마도 어머님도 세탁기 없이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언제부터인가 옷은 한번 입으면 빨래 바구니로 직행했다. '한번 입고 빠는 한·입 세제'라는 제품도 판매 중이다. 오염의 정도에 상관없이 한번 입었으니까 빠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가 "넘치게" 위생적이 되었을까. 심한 오염이 아니라면 그리 자주 빨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습관이 되었다.


아하, 다른 이(세탁기)의 힘을 빌려서 세탁을 하니 한 번만 입고도 쉽게 내놓을 수 있는 거였다. 내 손으로 손빨래를 해야 했다면 가급적 세탁 횟수를 줄이려 했을 거다. 힘이 드니까. 그런데 세탁기가 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원래 있는 세탁기이고, 전기료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빨래하는 거에서 몇 개 더 추가되는 거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분업의 단점이 이런 것일까.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 것에 둔감해지고 무관심해져서, 어떤 결과가 생기든 남 일로 여기게 된다.


찬희가 태어난 2009년 즈음, 3kg 용량의 아가사랑세탁기가 유행했다. 나도 선물 받아서 한동안 요긴하게 썼다. 아기 옷, 여름 땀 냄새나는 옷, 삶은 수건을 수시로 빨 때 편리하다며 좋아했다. 11년 후 고장이 났고, 남은 세탁기 하나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니 이럴 수가! 관리비 고지서에 기록되는 물 사용량이 약 2톤이 줄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편리하다고만 생각하고 세탁기를 자주 사용했는데, 그 조그만 녀석이 물 사용량이 그렇게 많았는지 몰랐다. 지나고 보니 굳이 없어도 괜찮은 물건이었다 싶다.


세탁기를 자주 돌리면 전력 사용량이 늘어난다. 물 사용량이 많아지고, 세제로 인해 물이 오염되고, 하수처리에 부담이 되고, 미세플라스틱이 많이 배출된다. 평소 손수건, 면 마스크는 샤워할 때 손으로 조물조물 세탁한다. 속옷만이라도 샤워할 때 손빨래를 한다면(수건은 좀 더 구비해야겠다) 세탁기 돌리는 횟수는 분명 줄 것 같다.


물만큼 백 퍼센트 재활용되는 건 없다. 하늘 아래 새 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염된 물을 정화하여 강에 배출해도 되는 수준까지 만들려면 화학약품 사용과 더불어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열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청결은 당연히 중요하다. 혹시 옷을 세탁하는 데 있어 "과잉 청결"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로 인해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봐야겠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 행동이 환경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