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 여행 후 기억 보정
벼르던 쾰른으로 여행을 간다.
작년 추석에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고, 남편이 렌트카로 쾰른투어를 해주었다. 멋들어진 성당에 다녀왔다고 하니, 가고 싶다고 아이들이 몇 달째 졸라댔다. 연말연시 휴가에 차도 생겼으니 이번에 가기 딱 좋다.
쾰른엔 뭐가 있지. 도착 30분 전에 부랴부랴 찾아본다. 쾰른 대성당,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어놓는다는 호헨졸렌 다리, 초콜릿 박물관. 예쁜 구시가지와 박물관, 쇼핑몰도 있었으나 어린이를 모시고 다니는 여행에선 제외다. 일단 대성당에 들렀다 생각해 보자.
숙소에 차를 세우니 12시다. 체크인하기 이른 시간. 여행할 때 유용한 지도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화장실도 좀 쓰고. 공손한 태도로 들어가 물었다. 오후에 체크인 할 건데 지도 좀 가져가도 될까요? 카운터 직원은 미소 지으며 지도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화장실도 물어 들렀다. 계속 제 발 저렸다. 여기서 하루 잘 거지만 아직 체크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의 서비스를 이용해도 되는가? 숙소에 묵는 척하고 화장실만 쓰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까? 체크인 후라면 갈만한 곳과 저렴한 여행 팁을 물으며 호텔직원의 친절을 태연히 누렸겠지만 지금은 빨리 나가고 싶다. 남의 친절은 그가 내 지불을 알았을 때만 편하다.
숙소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쾰른 대성당이었다. 지하철 티켓을 산다. 남편이 알아본 바로는 5인 그룹의 1일 무제한 패스가 19유로란다. 영어로 설정했는데도 독일어로 나오는 키오스크와 한참 겨루기 끝에 남편이 사고 말았다. 조사와 달리 17.5유로라 제대로 샀는지 갸우뚱해한다. 외국 살면 이런 일이 태반이다. 별일이 생기기 전까진 아무 일도 아니다...
성당에 도착하니 거대한 규모에 눈이 벌어진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란다. 하늘을 찌를듯한 첨탑이 줄줄이 있고, 첨탑을 구성하는 사선엔 촘촘한 장식들이 있다. 면면엔 아치형 구조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감싸고 있고 중간중간에 각종 인물들이 빼곡한 장식장이 있다.
저번에 다녀온 기억을 되살려 남편이 입구를 찾았다. 띠로리-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인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테러위협 때문에 폐쇄되었다고. 어쩐지 역에서 나오자마자 경찰이 진을 쳤더라. 가는 날이 폐쇄날이다. 악운을 한탈 할 틈이 없다. 어린이가 성나기 전에 얼른 다음 코스를 정해야 한다.
급히 초콜릿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지도에서 찾다 뒷면을 봤는데 쾰른카드 광고가 있다. 19유로면 5인이 하루동안 대중교통이 무료고 박물관은 반값이다. 잉? 우리 건 교통비만 무료고 박물관 할인은 없는데. 재빨리 머리를 굴린다. 쾰른카드+박물관 반 값은 박물관 제 값과 비슷하다. 그럼 지금이라도 쾰른카드를 사서 박물관을 한 군데 더 가면 좋지 않을까?
호텔에서 쾰른카드를 살 수 있대서 두 군데를 들렀으나 한 군데는 없고 한 군데는 숙박객에게만 판다. 휴. 미리 알아봤으면 돈을 잘못 썼다는 패배감이 없었을 텐데. 허탈한 기분으로 초콜릿 박물관으로 간다. 건물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다. 온라인 티켓은 줄이 따로 있길래 얼른 켜봤다. 휴. 독일... 페이팔과 계좌이체의 나라... 현장구매 줄로 옮겼다.
초콜릿 박물관은 추천하고 싶다. 영어해설이 있고 영상이 많아서 나도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다. 초콜릿을 만드는 실제 설비가 있고 그것으로 생산되는 초콜릿을 잔뜩 먹을 수 있다. 신기하고 맛있고 재밌는 박물관.
줄 서고 박물관 구경하고 먹다 보니 오후 5시가 다 됐다. 박물관을 더 갈 시간이 아니니 쾰른카드를 못 샀어도 괜찮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것 치고 잘 보냈다. 조사를 안 해서 놓친 불이익에 신경이 가지만, 사실 조사 안 함의 이득은 잊고 있던 건 아닌지. 얕은 후회를 막겠다고 모니터 앞에 앉아 머리털 빠지지 말고 그냥 대강의 여행 후에 기억을 보정한다. 쾰른은 달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