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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May 09. 2022

텃밭 당근이 준 교훈

먹을 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 지인의 집에 하루 신세지게 되었다. 이 분은 식물을 키우는데 관한한 금손을 가지고 계신데, 레몬을 씨앗에서 나무로까지 키워낸 대단한 분이셨다. 내가 신세진 그날도 지인의 베란다텃밭은 나무와 온갖 식물로 베란다 숲을 보는 것 같았다.


보다보면 빠져드는 지인의 베란다 텃밭을 보고 있는데 이 분이 당근을 화분에서 뽑아 건네주었다. 손가락 두 마디 밖에 되지 않는 이 당근은 한입 거리도 안 되는 크기였다. ‘귀엽다’며 연발하고 있는 나에게 지인은 씨앗부터 손가락 두마디 길이만큼 자라기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줬다. 갑자기 나는 숙연해졌다. 이 귀한 걸 ‘한입 거리’라고 가볍게 얘기했다니, 당근에게 미안했다.


아무것도 치지 않고, 순수하게 자연의 힘만으로 기른 이 화분 속 당근을 보며, 만약 지구에 큰 이상이 생겨 집에만 있다면 이 작은 작물을 먹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새삼 농작물 하나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풍성한 자연이 필요한가 생각이 들었다.

FAO에서 봤던 면적 당 식량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도 떠오르고, 과도한 농약과 비료 사용으로 사막화되어 가는 땅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도 지나갔다. 기후변화까지 심해지고 있으니, 여러가지 상업적 농업에 의존하기 힘들어져 직접 재배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저렇게 작은 당근조차 6개월이 걸리는데,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많은 당근이 필요할 지, 땅은 얼마나 필요할 지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휙휙 지나갔다.

동시에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마을을 자연을 살림으로서 사람들도 살려낸 사와도고도 떠오르고, 옐로스톤의 돌아온 늑대도 떠올랐다.


‘결국은 자연을 살리는 방법 밖에 없는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지인은 그새 당근을 씻어와 맛보라고 건넸다. 나는 이 귀한 걸 먹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어차피 먹기 위해 기르는 거라며, 괜찮다고 먹으라 했다. 맞는 말이다. 먹기 위해 길렀으니 먹는 게 맞다. 단지 얼마나 귀한 지 알아버려서 한 입에 넣어 버리기가 아까웠다. 손에 받아든 작은 당근의 한 귀퉁이를 베어 물었다.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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