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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병찬 Jan 11. 2024

하루의 시작

잠을 자는 동안 무의식도 어떠한 탄식 혹은 희락을 겪을까? 안타깝게도 무의식은 의식에게 좀처럼 이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가끔 무의식이 의식에게 이에 대해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꿈을 꿀 때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의식은 눈을 뜨며 맞이하는 세상의 정적을 무의식의 외침보다 중요시하는 듯하다.


하루가 순환함에 따라 우리의 의식은 여러 탄식과 희락을 통과한다.

여느 사람처럼 이를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에 붙은 하루의 탄식과 희락을 떨어 버리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낀다. 특히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이 열망은 저녁 시간을 살아갈 마지막 힘을 주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귀가 후의 목욕이 하루의 탄식과 희락을 떨어 버리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마치 하루를 통과한 나의 의식에게 ‘Let it go’로 표현되는 자유를 선물하는 듯하다.


유대인들은 저녁 해가 떨어지는 순간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겼다고 한다.

서슬처럼 푸른 새벽의 초광(初光), 그 빛 속으로 깨어 흩어지는 착실한 인류의 훈김도 적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는데.

그들은 아침과 오후의 일상을 비로소 끝낸 자들 위로 덮이는 붉은 노을의 진행, 그 아래에 모이는 착실한 이의 탄식과 조금은 덜 착실했을 수도 있는 이의 희락을 건강하게 정리하는 것을, 소중한 가치로 여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가끔은 대학교 시절에 느꼈던 새벽의 상쾌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대학생 간 의도치 않은 생기 공유의 현장감, 각자의 경영을 앞둔 공대생의 다짐, 항상 반겨주시던 “아침 영업합니다” 백반집 사장님 부부, 잠자리와의 단절을 위해 씻고 나온 이의 몸에 일말의 습기도 남기지 않는 새벽의 바람.

정말 그리울 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전과 다르게 사회복무를 하는 지금은, 저녁에 남는 탄식과 희락을 정리하는 것의 가치를 배우고 있다.

일상을 통과하며 몸에 붙은 탄식과 희락을 떨어내는 저녁의 시작이 있어야, 비로소 상쾌한 새벽의 시작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잠의 장막 속에서 말없이 탄식과 희락을 통과할 무의식이, 일상을 통과하는 의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해가 떨어지는 시간의 경계는 하루의 시작이 된다.



<저녁의 시작>

탄식과 희락 위로 덮이는 노을
고생한 사람들이 지나는 자정 무렵의 학교

<새벽의 초광 - 저녁이 선물한>

기숙사에서 바라본 초광
또 다른 기숙사에서 바라본 초광
초광을 맞는 학교 쪽문
초광 속 연구실로 향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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