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밟히지마 ep.10]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속담은 명언 중의 명언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고 뒷이야기는 반드시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간다.
나는 친한 아나운서가 별로 없다. 사실 방송국에 아나운서는 정말 극소수이기도 하고 함께 협업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기에 오늘의 동지도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내가 잘린 프로그램에 나의 동료 혹은 후배가 MC가 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기 때문에 담담해질 만도 한데 뼈 아픈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소위 예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나운서들의 모임이다. 그렇지만 공급에 비해 방송국의 수요는 턱없이 부족해서 매우 뛰어난 고급인력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아예 없거나 반백수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참담한 지금의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아나운서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그게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과 현실 그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드러내기도 하는데, 한때 나는 그런 누군가의 뒷담화 대상이 되기도 했다.
1년 정도 방송을 쉬고 강의를 하면서 나는 대학원 준비를 했고 그 후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방송국 이직에도 성공하게 되었다. 당시 지원한 방송국은 근무 조건이 좋았고 업무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욕심이 났던 곳이었다. 꼭 합격하고 싶었다. 경력직을 뽑았기에 나뿐만 아니라 이미 방송 경력이 있는 동료들, 선배들에게도 욕심나는 자리였다.
내가 아는 한 친구도 그 자리를 욕심냈다. 소위 ‘꿀’이라고 할 정도로 근무 면에서는 부담이 없으면서도 타이틀은 좋은 메인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었다. 그 자리에 나는 300: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최종 1인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기뻤다. 내심 방송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불안했던 경력단절 상황이었고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선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국 재취업은 나에게 큰 자랑이었고 감사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곧, 그녀의 말도 제3자에 의해 전해 듣게 되었다.
“경쟁률 엄청 치열했다고 하던데, 300:1이라고 해서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뭐야. 걔가 된 거야?! 경쟁률 높았다며.”
어이없었지만 가볍게 넘길 수 있었던 그녀의 뒷담화는 날로 강도가 세졌고 회사에서 나에 대한 오해는 내가 해명할 기회도 없이 쌓여만 갔다. 실제로 그녀는 내가 맡았던 프로그램 차기MC로 내정되기도 했었다. ‘결국 그녀가 원하는 대로 됐구나.’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을 땐 잠시 착오가 있었다며 없던 일로 하자는 피디의 지시가 있었다. 완벽하게 을(乙)일 수밖에 없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선 항상 그녀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난 그녀보다 더 오래 방송했고 주요 방송도 많이 맡아봤다. 그녀가 절대 쌓을 수 없는 경력을 나는 악착같이 다 챙겨서 완벽하게 해냈다. 그녀의 험담으로 나를 잘못 오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일일이 찾아가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해명(?)한 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의 본모습을 알아봐 주셨고 내가 더 오래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남을 깎아내린다고 내가 올라가진 않는다. 그리고 남에 대한 비방은 내 무덤을 파는 일이다. 내 그릇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며 나의 옹졸함과 조급함을 들키는 일이다. 그리고 세상엔 비밀은 없다. 반드시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고 어떤 방식으로도 그 대가는 치르게 되어 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