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by 이엘

나는 이름이 없었다.


나는 이름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학교에서


이 말을 하려면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말해야 한다.


그래 2007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xx초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입학식을 마치고 반을 배정받있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놀았으며 나도 그 사이에 끼고 싶어서 책상 사이를 양손으로 잡고 그네처럼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그런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수업시간에 터졌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 것이었다.


대변이 마려웠다.


아이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선생님께 말해서 화장실 갔다 와."


그러나 나는 선생님께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다는 개념 자체를 몰랐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똥을 바지에 지렸고 어머니가 학교에 왔다.


어머니가 바지를 갈아입혀 주셨고 나를 꾸중했다.


"너는 왜 똥 마렵다고 말을 못하니?"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은 일단락 된 걸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 내가 수업시간에 똥싼 아이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그건 2학년 때까지 3학년 때까지 지속되었다.


결국 제대로 된 친구 한명 사귈 수 없었다.


당시의 나는 서운했었다. 그렇지만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는 지는 몰랐다.


3학년에 올라오고 나서 나는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 한명도 사귈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코딱지를 파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나는 제대로 사회화가 되지 않았었던 걸로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몰랐고 선생도 몰랐고 애들은 더더욱 몰랐다.


그때의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더러운 아이로 낙인찍혀 고립되었었고 애들은 내가 우는 것을 비웃었으며 남자애들은 맞짱이란 명목으로 날 불러내어 폭행했다.


선생들은 말리지 않았다. 보고도 못본 척 했다.


차라리 그거라면 이해라도 했겠다.


어느날은 교실에서 내가 코딱지를 판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어떤 아이에게


"야 내 앞에 어떤 애가 코딱지 판다?!"


라고 말한 것을 들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선생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잘못해서 그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았다.


4학년에 들어왔다.


나는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영어학원에 가는 차량 안에서도 나는 돈을 뜯기고 구타를 당했다.


내가 아는 여자애 앞에서도 말이다.


학원에서는 놀림을 당했다.


어느날 학원 차량에서 어떤 남자에게 나에게 말했다.


"너 pc방에서 야동 본다며!! 소문 다 났어!!"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pc방에서 야동 본 적이 없다. pc방이라는 데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소문은 학교에서도 퍼졌다


나는 괴로웠다. 그래서 친구 없는 기분을 도서관에서 풀었다.


도서관은 내 공간이었다. 점심 시간 때마다 쉬는 시간 때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책은 나의 위로의 산물이었고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나의 영웅이었다.


사기범에게 당한 가족의 삶


5.18 민주화 운동 당시의 민중과 학생의 삶


성폭력 피해 이후의 딸의 삶


삼국지


특히 왕따로 인해 삶이 지옥이 된 주인공의 심경도 읽었다.


하지만


그 왕따 피해자의 삶은 무결해서 내가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여겼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5학년이 되어서도 6학년이 되어서도 왕따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난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코딱지를 파고 있었고 연필을 씹고 있었고 사회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로부터는 기피 대상이었다.


난 그것을 내 잘못이라 여겼다.


사회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충동성이 있어 남에게 몇번 피해를 끼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6학년 때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바꾸어 주시신 못하셨다.


6학년 때 어떤 아이는 나를 구타했고 자기 여동생과 같이 나를 놀렸다. 그리고 실내화 가방을 밖으로 던졌다.


6학년 때 어떤 아이는 내가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있을 때 화장실 칸에다 물을 뿌렸다.


나는 늘 만신창이인 상태로 집에 왔다.


나를 괴롭혔던 건 어른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어른들은 상대방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혐오하거나 차별해선 안된다고 아이들에게 안 가르쳤나 싶다.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갔다. 난 그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성 부족으로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했고 거기서도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와 자리를 같이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조별 활동도 같이 하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구타도 당했다.


여자애들은 나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가끔 놀아주었다.


나는 그것을 거지마냥 받아먹었다.


난 중학교 때도 도서관에 갔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책 학교 폭력 피해자의 책을 읽으며 공감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잘못을 검열했다.


내가 여자애들을 기분 나쁘게 해서 그런가?


내가 애들을 욕먹인 적이 있어서 그런가?


중학교 때 생각해보면 난 존엄이 지워졌던 상태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내 탓만 하고 있었다.


그 즈음 나는 나 만의 영웅을 꿈꾸고 있었다.


정의롭고 멋있는 나만의 영웅을


고등학교에 올라갔다. 남고였다. 거기에서는 힘있는 아이들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소위 짱을 먹었다.


힘있는 아이들은 전자담배를 피우면서 선생들을 농락했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선생과 아이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교실 안에서 권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 어느 곳에도 낄 수 없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처럼 왕따는 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웃기는 장난을 했다.


왕따는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타를 당했다.


심심풀이로 구타를 당했고 내 사생활까지 애들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반겼다.


적어도 왕따는 당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친근하게 대해주니까.


동등한 관계는 아니어도 말이다.


남고는 정글이었다.


남자애들끼리 성적인 농담을 하는 것이 정형화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곧 권력이었다.


여자애 먹는다 라는 성적인 농담이 일상처럼 지나갔고 더한 말도 행해졌다.


그것이 곧 권력이었다.


심지어 여선생님 앞에서도 성적인 농담을 했다.


성적인 농담을 잘 하는 남자아이는 반 안에서 권력을 얻었다.


난 그 모습이 처음에는 이상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


그 때 당시를 생각하면 성은 일종의 권력이었다. 그걸 말하지 못하는 나는 약자였던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보면 학교는 윤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때 보면 학교는 학생 지도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내가 몇번 선생님께 가서 고발했지만 아이들은 미안하다는 사과 뿐


실질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원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뭐가 달라지겠는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 2 들어서 난 공부를 시작했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내신 성적의 향상은 이루었다.


내가 왜 공부를 했느냐고?


그래야 애들이 무시를 하지 않으니까.


고 3 들어서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도 하나하나 공부를 했다.


나도 내신 성적의 급격한 향상을 이루었다.


그렇게 중위권 인서울 대학의 수시 1차 합격을 받아내었다.


아이들은 나를 다른 눈빛으로 처다보았다.


선생님들도 나를 인정해 주었다.


난 드디어 존엄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학에 최종합격을 한 후 나는 드디어 놀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지잡대를 가거나


명문대를 가거나


그래도 나는 존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또다시 편입을 준비하여 인서울 최상위권 대학을 갈 준비를 한 것이다.


내 위치는 애매한 위치이니


25살이 되고 나는 편입에 실패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남몰래 속으로 지잡대를 무시했으며


사회의 하류 계층 즉 조폭 하류 인방인 등등을 무시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었을까?


나는 이제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사회는 내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계급 성적 지위?


확실한 것은 윤리는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그 사회 속에서 망가진 인간이 되었다.


내 이름은 없다.


난 내 이름을 찾기 위해 내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나만의 영웅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영웅을…

작가의 이전글아동성착취물 소지 판례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