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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May 31. 2022

나는 당신을 무슨 마음으로 맞이하는가

햇병아리의 고민

"여기 호스트는 호스트같지가 않아. 같이 놀러온 사람 같아"


세 번째 모임이던가, 갑자기 그가 던진 말에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싶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고 있는 사이에 그는 이어서 다른 호스트들의 험담을 잔뜩 해댔다. 누가 봐도 돈벌이로 모임을 한다느니, 기계적이라느니, 대화하는데 영혼이 없이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더라니 하는. 저 말이 욕은 아니었구나 싶어 안도감에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호스트가 음식을 왜 그렇게 맛있게 먹어?"


왜냐니, 배고파서 그렇다. 음식을 준비하고, 당신을 맞이하고, 술이 아직 들어가지 않아 어색한 당신들 사이의 공기를 질문들로 메꾸다 보면 자연스레 허기가 진다. 내가 안주를 한 입 먹으려는 그 순간에도 열 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먹다 말고 얼른 대화 주제를 꺼내 본다. 


오늘은 아무도 안 궁금해할 호스트 노릇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본다. 

나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당신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가. 




개인적으로 이번 5월은 험난했다. 주에 약 3회 정도의 대면 미팅을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했고, 업무는 과도하게 쌓여서 주말 출근은 물론 매일 야근하기 일쑤였으며 가족 행사는 또 왜 이리 많은 건지. 친구들과의 약속은 엄두도 못 냈고, 마음이 지쳐 운영하던 모임 3개 중 2개는 운영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왕 시작한 거 1년은 해봐야 하지 않나, 라는 이상한 근성이 있어 매주 1회는 모임 호스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사실 벌써 힘들다는 것도 우스운 얘기이긴 하다. 뭐 얼마나 했다고. 


그래서 뭐 얼마나 했는지 보니, 약 3개월 하고 반. 벌써 분기가 지나갔다. 시간은 참 신기한 것이다. 어떻게든 버텨내고 나면 또 금방 흐른 것 같은데, 세고 있자니 참 느리게도 간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모임은 그동안 다녀가신 분들의 좋은 후기 덕분에, 6월 말까지의 일정이 모두 판매가 완료되었다. 워낙 소규모이고 주 1회만 열고 있다 보니 품절이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예약 내역을 보면 내심 기분이 좋은 건 부정할 수 없다. 




| 호스트의 '매력'에 대한 고민 


사실 나는 친목 모임에 참가해본 경험이 일절 없다. 모임을 운영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혼자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것처럼.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며, 불가피한 선택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혼자 창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약 34년간 묵혀왔던 오랜 고민거리를 꺼내야만 했다. 나 개인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당겨야 하는가, 나의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것인가. 이전에 팀으로 공동 창업을 했던 때와는 매우 다른 무게로 다가온 고민이었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내가 가진 비전을 실현해야 하며, 사람들이 믿고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잠깐 일 얘기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와 보자면, 모임을 운영하는 것도 사실 비슷한 맥락인 듯 보였다. 모임을 운영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호스트의 '매력'이다. 나는 그동안 '신규', '소규모', '반말 모드'라는 컨셉으로 나의 무매력을 잘 가려놓았다. 사실 처음 모임을 열 때만 해도 하다 보면 나만의 매력이니 컨텐츠니 찾을 수 있겠지 뭐, 하며 별생각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찾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언제나 없다. 


곰곰이 그동안의 모임을 떠올려보니, 사실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술 모임을 운영하고 있지만 '술'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전무했으며, 음식이나 공간에 특별한 '컨셉'을 챙기지도 않았고, 항상 모임 날의 이야기들은 주제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흘려보냈다. 사람들을 빵 터지게 할 재치 있는 이야기도 준비한 적 없었고, 어색할까 봐 분위기를 말랑하게 풀 수 있는 간단한 게임도 준비한 적 없으며, 코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라며 아낌없이 술병을 열어제낀 적도 없다. 나는 그 동안 오신 분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단 말인가. 후기가 좋은 게 신기할 수준이다. 


6월 내 계속 이 부분을 고민해 볼 예정이다. 7월부터는 모임의 가격을 상향했다. 예전부터 가격을 조금 더 높이는 대신 술을 더 달라는 아우성이 많았는데, 신입 뽀시래기 호스트로서 시세 이상의 가격을 받는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라서 계속 최소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 분기를 보내고 난지금은 가격을 올리고 더 적은 분들이 찾아주셔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음 분기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다면 더 소규모 인원으로, 조금 더 많은 술과 함께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 '주제 없는 모임', 이대로 괜찮을까?


요즘엔 정말 없는 모임이 없다. 독서와 영화는 물론이고, 사교, 여행, 타로, 산책, 인생샷까지 모임 어플을 들여다보면 세상엔 별별 주제의 모임이 많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보고 뭐 다 있는데 할 게 없잖아? 라고 할 테지만 나의 경우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다양한 것들에 열려있다는 것을 반가워하는 쪽이다. 독서 모임이라도 100개면 100개의 성격이 다 다르고, 분위기가 다 다르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트레바리가 아무리 커져도, 작은 독서 모임들 또한 끊임없이 생기고 있는 이유이다. 다양한 모임이 많다는 건, 가치 있는 모임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참여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주제가 없는 모임'이 사실 더 드물다. 처음 모임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3개월만 주제 없는 모임을 운영해보고 나만의 컨텐츠를 짜서 특색있는 모임을 운영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주제 없는 모임을 계속해서 운영할 예정이다. 물론 컨텐츠를 구상해서 다른 모임을 하나 더 열어볼 계획도 있다. 


주제 없는 모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많은 분이 궁금해한다. 모임에 오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도 "다른 날에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해요?"일 정도. 예전 우리 반말로 얘기해볼까? 글에 잠깐 언급했듯 사실 술이 들어가다 보면 그날의 이야기는 사람들 간의 케미와 의식의 흐름에 이끌려가는 편이다. 여행, 추억, 고민거리 등 세상 사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날이 많고, 연애 이야기도 단골 주제이며 다른 모임 참가 경험담도 매우 재미있는 안줏거리다. 


호스트로서의 고민은 그러다 보니 참여자들의 텐션에 따라 모임의 퀄리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소규모 모임이다 보니 우연히 5명이 다 조용한 분들이 오신 경우 모임 내내 다 같이 낯가리면서 머뭇거리다가 모임 끝날 때쯤 되어서야 친해져서 헤어지자니 그제야 뭔가 아쉬운 분위기가 될 때도 있다. 그리고 정말 개의치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지만 그런 모임 후 막상 후기가 한 개도 안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면 괜히 약간은 씁쓸해진다. 


모든 모임에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무래도 그저 바람으로 그칠 것이다. 호스트로서 대화를 아무리 이끌어간다고 해도, 누군가는 호스트가 혼자 떠드는 모임이라며 재미없어할 테니까. 그냥 이런 날도 있구나, 하고 지나가게 되는 큰마음을 기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모임 정사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자면, 새삼 일도 아닌데 뭐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은 날도, 다운된 날도 모임을 하는 날이면 오시는 분들에게 에너지를 듬뿍 얻는 입장이다. 술이 땡기는 날이나 아무 일도 없는 날이나 하루 나와 함께 술을 마셔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기도 하고. 


마음은 이렇지만 아직까지 막상 현실적인 고민은 오늘은 뭘 먹지, 늦은 시간에 집에는 잘 들어갔는지, 뒷정리는 언제 다하지 이정도 인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그저 내일도 즐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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