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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Jul 13. 2022

당신이 보고 싶어지는 밤에는

마음의 부메랑

"언니 생일 축하해!"


약 두 달 전의 모임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그녀가 아침 이른시간에 카톡으로 생일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예상치 못했던 연락에 뚝딱거리며 답장을 보냈다. 짧은 근황톡이 이어졌고, 곧 할말이 떨어진 나는 조만간 꼭 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언니가 고생이 많다"


새벽 늦게까지 놀았던 그날 모임의 다음날, 그녀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잘 들어갔어?도 아니고, 속은 좀 괜찮아?도 아닌, 고생이 많다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피곤함이 녹아버렸다. 


모임에서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고작해야 세 시간이다. 물론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들이 많기에 평균적으로 그것보다는 더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세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대화보다는 술기운과 주정을 나누는 시간이 된다. 모임이 끝난 이후에는 우리는 다시 서로의 일상으로 흩어진다. 카톡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길게 이어가기는 조금 어렵고, 짧은 인사만 나누기에는 우리는 서로가 궁금하다. 


우리는 짧은 시간동안 무엇을 주고받고 있는 걸까?

오래전에 짧게 만났던 그녀가 왜 가끔 생각나고 보고싶어질까?






| 오늘 상사한테 대들고왔어. 다음주에 진짜 사표 쓸거야. 


그녀는 들어오면서부터 얼굴이 시뻘건 상태였다. 밖에가 많이 더운가보다, 하며 에어컨이 가장 잘 드는 시원한 자리로 그녀를 안내했다. 10분 후 그녀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테이블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편을 거들며 얼굴도 모르는 상사를 같이 욕했다. 10분 동안 회사 에피소드를 실컷 쏟아낸 그녀는 얼굴이 뽀송해졌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의 대화에는 뭔가 특이점이 있다. 상황의 앞뒤나 맥락을 굳이 자세하게 알려고 하는 대신, 무작정 응원을 건네는 것이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응원의 메시지를 받는 것은 참 이상한 모먼트다. 그런데 이게, 이상하게 진짜로 위로가 된다. 


나는 얼마전에 창업을 해서, 그날 하고 있던 고민들을 술자리에서 종종 털어놓는데 다들 듣고나면 대답은 항상 한결같다. 와 그렇게 하는 게 참 대단하다, 너는 잘 해낼거야. 그들은 직장인이기 때문에 내 고민에 공감하지 못할텐데도, 따스한 말을 건네준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고마워하고 넘겼는데, 이게 하도 응원을 받다보니 진짜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시크릿 효과인가. 


모임에서 누가 뒷담화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같이 욕한다. 누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맛집 추천과 함께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배웅을 한다. 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위로와 응원을 한다. 이건 우리가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데, 사실 이렇게 따스하고 다정한 말은 사회에서 접하기 희귀한 것이기도 하다.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으면 조금 더 상세한 관심과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끔은 그냥 다 덮고 내 편을 들어주는 한마디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 혼술 좋아하는 사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도 부류가 참 많고 다양하다. 첫번째로는 즐겨먹고 좋아하는 술 종류가 각자 다르고, 혼술파와 술자리분위기파로 나뉘며, 술맛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취향이 맞는 술친구가 되는 것은 의외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모임이 시작되면 우리는 서로 호구조사를 한다. 서로의 술취향을 탐색하는 시간이랄까, 주종부터 주량까지 술에 관한 대화만 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는 원래 술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술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본격적인 혼술러로 자리잡았다. 집에는 항상 위스키와 꼬냑을 구비해두어 자기전에 꼭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혼술을 좋아할 것이라고 의레 짐작했는데, 오는 사람들마다 물어보고나니 생각보다 혼술은 마이너한 취향인 것을 알게 되었다. 술먹고 나누는 대화와 분위기가 즐거운 것인데, 혼자 먹으면 분위기도 안나고 재미도 없단다. 술을 좋아한다는 공감대로 한발짝 가까워졌던 우리는 여기서 한발짝 멀어졌다.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갈리는 것은 주종이다. 내가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평생 한 종류의 술만 먹을 수 있다면 뭘 선택할거야? 인데, 이 질문을 하면 다들 한껏 심각해지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정말 다른 사람이 보면 소피의 선택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이 제법 웃기다. 서로 그 모습을 우스워하면서도 자기 차례가 다가오면 또 그렇게 혼자 진지할수가 없다. 주종은 보통 독주파/강경소주파/와인파/전통주파로 파벌이 조금 나누어져 있는 편이며, 칵테일파는 조금 레어해서 어쩌다 한 번 출몰한다. 


그렇게 파벌을 나누고나면 우리는 전쟁을 시작한다. 각자의 이론이 마구 쏟아지는데 그 누구도 타협하지 않는다. 애초에 아무도 타협할 생각이 없이 시작되었던 이 전쟁은 결국 평화적으로 끝이 난다. 누군가 잔을 들면, 나머지 사람들도 말없이 입을 닫고 잔을 들어 부딪힌다. 정말 마법같은 순간이다. 우리는 짠으로 평화를 이루었고, 다같이 얼굴이 한층 붉어지며 한발짝 가까워진다. 


술모임의 매력은 이런것이다. 공감대를 이루었다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가, 다시 화합되는 복합적이 감정들이 굉장히 짧은 시간안에 모두 이루어진다. 하나의 매개체로 상대방과의 교류가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 것인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도 모르게 어느새 우리는 한층 더 편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묘하게도, 우리가 만나는 짧은 순간에 이상하게도 서로간의 정이 생긴다. 

속깊은 얘기를 한것도 아니고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고받은 것도 아닌데. 


그냥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로와 응원을 해줄 뿐인데,

다음날 어제의 잔상이 진하게 남는다. 


우리가 주고받은 짧고 굵은 정은 에너지가 되고, 일상을 버티는 동력을 제공한다. 

그 동력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당신이 그리워진다. 

맥락없이 따스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필요함에, 오늘도 나는 당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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