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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May 05. 2022

만약 우리가 살처분을 멈춘다면

생명과학자의 철학


     예방적 살처분-가축전염병 예방법]에 의해 조류독감과 구제역과 같은 상시적 가축전염병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서 제1종 가축전염병인 우역·우폐역·구제역·아프리카 돼지열병·돼지열병·고병원성 등의 감염이 확실하거나 거의 확실한 경우에는 반드시 살처분을 하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일정한 반경 내의 가축들을 도살하는 것'을 '살처분'이라고 합니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4월 사이 국내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AI) 발생으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수는 약 3,000만 마리라고 합니다.


문제는 안락사시킬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수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생매장을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비교할 수 없겠지만, SNS 등으로 접한 러시아에 유린당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참상이 자꾸 떠오릅니다.


살처분을 수행하는 수의사와 공무원들 및 현역 장병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이거니와 자식들처럼 애지 중지 키웠던 농장주의 아픔은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요? '청정국가' 유지를 위해 이러한 극단적인 정책을 법제화하다니.


필자는 2014년 초에 (재)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생명윤리 관련 정책연구과제 자유공모에   


주제: 가축 살처분에 대한 생명윤리 정책제안

연구목적: 진보된 생명윤리 및 연구기반 예방적 가축 살처분 극복 방안 모색

 

의 내용으로 연구과제를 신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초까지 가금류 AI (조류독감) 확산으로 인해 살처분이 한창 이루어져, 거의 매일같이 어디서 몇 마리 살처분을 시행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당시 문헌 등 조사를 해보니 2003년에서 2014년 초까지 가금류만 3,500만 마리가 살처분된 것을 보고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인데,


당연히 떨어졌습니다.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별도의 전문적 분석이나 실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생명윤리'의 범위가 '인간 혹은 인간으로부터 유래한 생체자원을 실험하는' 데 한정되어 있었고 이제 막 연구윤리심의위원회 (Institutional Review Boards, IRB) 승인 제도가 도입되는 시기여서 동물, 특히 일반 가축에 대한 연구윤리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형 국가과제를 하는 연구단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이런 사정을 잘 알있었지만, 답답해서 호소하는 심정으로 혹은 기록으로라도 남기려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필자의 눈엔, 가축들에게 전염되는 대부분의 병에 대한 기전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을 선택하는 대신에 당장 급한 불을  끄고자 하는 정책 우선에 의한 참상이 아닌가 합니다. 모두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필자는 불편한 현상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고 가장 지혜롭게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인수공통 전염병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만 있는데 과연 얼마만큼 진지하게 그 대응에 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을까? 살처분에 들어간 비용이 10년간 4조 원이라고 합니다. 1조 원의 예산만이라도 제대로 된 연구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처음 전염병이 들불처럼 번졌을 때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보다 일찍 찾아냈을지도 모릅니다. 전염병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생물 안정성 3-4단계 (biosafety level 3-4)의 인프라와 관련 분야 전문 연구 인력의 확보가 필요한데 미리 준비하지 않고 늘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만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했으니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요즘 많은 협회, 단체나 국회 등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하루빨리 '살처분'이라는 잔인한 방법을 멈추고 그 대안을 찾는 데 집중하길 바랄 뿐입니다.


무분별한 살생은 우리 인류의 건강한 수명연장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단축할 뿐입니다. COVID19 이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고 그 이면이 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윤리 청정국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 믿습니다.

   

언젠가 인류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 평균 수명이 100세에서 10,000세 이상으로 늘어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인류 스스로가 다른 생명을 한없이 존중하고 함부로 고통스럽게 헤치지 않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수준 높은 의식에 도달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또 한, 우리와 다른 종의 생명과 의지를 존중한다는 것은 당연히 같은 종인 인류 간의 차별적인 마음과 무지함에 의해 발생하는 무고한 살상과 전쟁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그 가능성이  비록 수조 분의 일이라 하더라도

이 가치 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 마음을 한 번이라도 내는 순간 이 세상의 분명한 인과 법칙에 의해 그 세계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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