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독일 연구소에서 연구할 기회가 생겨서 나갈 준비를 하던 중, 혹여나 한국에 다시 들어오지 못할까 해서 마음에 품었던 질문을 해결하고 싶어 당시 동화사 조실 스님으로 주석하시던 진제법원 선사님(13-14대 조계종 종정)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래 어디서 왔는고?"
"네, 그것이 알고 싶어 왔습니다."
우주는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와 마찬가지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와 같은 질문들은, 그 답을 끝내 찾지 못하는 우리 곁에서 늘 반복적으로 맴돌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요?
그냥 존재의 이유가 궁금해서라는 반사적인 대답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고 한다면..
- 시작을 알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 끝을 알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어서?
- 불가항력적인 태어남과 죽음 앞에 느껴야만 하는 무기력 함을 극복하고 싶어서?
- 내 존재의 영속성을 확인하고 싶어서?
글을 적다 아내에게 몇 번 물었더니 위의 몇몇 의견과 함께 아래와 같은 친절한 답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아무튼 저와 아내의 생각들을 나열하다 보니, 또 다른 마음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불가항력적인 불안함과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나의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면 사라질까 두려워했던 그 마음이라는 것도 더 이상 머무를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존재라는 '바다'가 있고 그 불안한 마음은 바람이 불어와 일렁이는 '파도'같은 것이라면 사라진 바다에 파도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만약, 바람이 더 이상 불지 않아 '파도'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냥 '바다'만 있을 뿐..
그래서 사라질까 미리 두려워하거나 이와 반대로 어차피 사라 질 것이니 다 버려버리겠다는 감정들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찾는데 불필요하다는 시크함이 조금 생깁니다.
이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바다'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평온하지 않는 마음으로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을 바라볼 엄두가 나질 않아, 빠른 스케치와 리허설을 통해 얻은 섣부른 결론으로 우선 안정을 취해 봅니다.
결국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과학도 사람에 의해 발견되고 발명되는 과정에 있으니 형이상학적인 마음과 영혼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메일의 서명에 제 멋대로 지은 글을 첨부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Science is Sailing on the 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