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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Nov 21. 2022

가을이 저만치 가네.

개미와 베짱이의 가을 밀당...

  아, 가을인가? 싶었는데 간밤에 흔들어대던 매서운 바람에 끝내 아쉬운 손길을 그만 놓아버렸나 보다. 탈색된 듯 검붉은 단풍잎이 빼곡하게 자동차 지붕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단풍나무를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끝부분에 매달린 잎사귀들이 비쩍 마른 모습으로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직도 빨갛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형제들 같은 잎사귀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는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다. 노랗게 빨갛게 선명했던 아름다움이 점점 빛을 잃어가고 바닥에 떨어져서 또다시 나무뿌리에게 거름으로 마지막 역할을 다하는 모습에 '정말 장하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자연의 순환이나 사람의 일생도 비슷한 것 같다.  

  노랑 빨강 초록의 빛깔들이 어우러진 나무들처럼 흑백 세상 속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리며 여러 빛깔의 개성을 뽐내는 사람들이 어울리며 살아간다. 사람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생각하면 시간의 순리를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태어나서 새싹처럼 자라다가 어느 순간 인생의 절정기를 맛보고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되면 낙엽이 되어 물러난다. 매년 반복되는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계속 더 오랫동안 영화를 붙들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다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기야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려니 생각하면 그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기는 하다. 고작해야 100번의 낙엽을 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수백 년을 버티고 서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의 깊은 가르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개미와 베짱이의 가을! 나의 가을은 어느 쪽이었을까?

  개미처럼 일만 하거나 베짱이처럼 놀기만 한 인생은 가을의 깊이를 느끼지 못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적당한 밀고 당기기를 실천해야만 진정한 가을을 즐길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올해의 가을 단풍잎은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누구에게는 가슴 시린 아픈 기억이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려한 수확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한순간이고 계속해서 반복되기는 어렵다. 떨어지는 낙엽 속에 아픈 기억, 희망, 기쁨 모두 묻어두고 새로운 싹을 틔울 준비를 해야 한다. 싹둑 잘린 가지에서도 새순이 돋아나듯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인내하면 더 예쁜 단풍을 보여주듯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마음속의 희망을 믿어보자. 올 한 해도 열심히 삶을 살아낸 개미님, 베짱이님! 슬픔은 희석하고 내년을 기약하며 수확의 기쁨만 간직한 채 힘겨웠던 가을을 이제 떠나보내자. 아쉽게도 나의 가을이 사라져 간다.

  

"가을님이 저만치 가네.

  빛바랜 옷들마저 벗어놓고 맨몸으로 떠납니다.

  노랑 저고리, 붉은 치마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내년에도 꼭 돌아오세요.

  겨울님 등쌀에 꼭꼭 문 닫아걸고 기다릴게요.

  미리 초록 봄님께 소식 주실 거죠?

  심술쟁이 여름님이 막아서거든 살살 구슬려서 손잡고 오세요.

  가을님 돌아오시는 길 마중 나갈게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뒤돌아보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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