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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Nov 25. 2022

나는 나는  물먹으러 왔단다 왔단다.

평범한 하루를 기다린다.

<출근 시간>  

  출근해서 교무실에 들렀는데 경찰관 두 명이 들어왔다. 방문 목적은 학교 담장 옆 가정집에서 사건 신고 해서 조사하러 온 것이란다. 학생들이 돌을 던져 큰 유리창이 깨지고, 야구공과 축구공이며 나뭇가지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증거 사진들을 살펴보니 과한 장난 수준을 뛰어넘었다.

  “애들이 진짜 구잡스럽네요. 쯧쯧...”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학생들 사이에 헛소문이 돌면서 한두 명으로 시작된 일이 점점 동조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나 보다. 주인이 잠깐 집을 비울 때마다 어지럽혀진 광경을 보고 처음엔 그냥 애들 장난이려니 하다가 급기야 참을성이 극에 다다른 것 같다. 교직원 회의가 소집되고 전체 학급에서 무기명 조사 및 교육적 지도가 이루어졌다. 심각성을 고려하여 관련 학생 학부모가 다녀가고 경찰서에 출두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1교시>    

  엄마의 부재로 맘이 쓰이는 지각 대장 학생이 요즘은 일찍 등교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듬직해진 4학년 남학생은 눈두덩이 부었다고 보건실에 왔는데 오늘따라 부딪쳤다고 했다가 핫팩에 데었다고 했다가 횡설수설 설명을 제대로 못 한다. 상태를 살펴보니 시력엔 지장이 없어 보이고 부기가 가라앉으면 괜찮아질 듯하여 냉찜질로 한 건 해결해 주고 교실로 보냈다.

 

<2교시>        

  보건 선생님, 무서워요. 팬티에 빨간 것이 묻어나는데 설마 병에 걸린 건가요?”

  갑작스러운 사춘기 초경에 당황한 3학년 여학생은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너무 빠른 신체 변화에 불안감이 나타났지만, 부랴부랴 처리 방법까지 시범 보이며 안심시켜 마무리해 주고 담임과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3교시>   

  오전에는 학급별 교육과정 발표회로 학부모의 박수 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왔다. 자녀들의 신나는 교육활동을 참관하던 어머니 한 명이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보건실을 방문했다. 입술에 핏기가 없어 보이고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긴 의자에 엎드린다. 함께 따라온 학생 할머니는 딸이 다이어트 중이라 아침을 걸러서 당이 떨어진 것 같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급히 나간다. 온수를 먹이고 혈압을 재고 침대에 누워 잠시 안정을 취했다. 할머니가 사 온 김밥을 몇 개 드시고 서서히 얼굴색이 돌아와서 귀가했다. 오늘처럼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가 쓰러지거나 공사하러 온 인부가 다쳐서 가끔 보건실을 방문하기도 한다.


<4교시>     

   ‘일부러 가슴을 내밀며 마음에 아픈 약 좀 발라달라고 찾아오는 능청스러운 보건실 단골 학생들을 오늘은 어떻게 요리해 줄까?’

  능청 꾸러기 학생 일부는 그나마 아침 일찍 등교하여 축구 스포츠 클럽활동으로 신체 에너지를 발산하는데도 수업 중에 에너지가 넘쳐흘러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사소한 시비를 걸거나 수업 활동에 방해를 준다. 심지어 올해 5학년 마지막 보건 수업 시간인데 한 명은 돌아다니고 한 명은 무기력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고 또 한 명은 연필로 교과서를 찢고 있는 행동에 할 말을 잃게 한다. 학급에 들어가는 교사마다 머리를 흔들지만, 다시 ‘보듬어야지’ 하며 한숨을 내쉬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5교시>   

  오후에는 재난 대피 훈련을 했다. 방송과 사이렌 소리에 귀를 기울여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학생들, 장난치며 느긋하게 걷는 학생들도 보이고 신발주머니로 머리를 감싼 채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 상황이면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평소에 훈련해 본 것과 안 해본 결과는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6교시>        

  나는 나는 목이 말라 물 마시고 싶단다. 보건실에 물먹으러 왔단다 왔단다.” ♬♬

  보건실에서 물을 먹고 싶다고 장단까지 맞추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오늘만 세 번째 방문하는 4학년 여학생 때문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오전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가루약 때문에 물 먹으러 오고, 점심시간에는 밥 먹었으니 물 마시러 오고, 하교하면서 또 목이 말라서 왔단다. 손가락을 삐어서 며칠째 보건실에 왔는데 이제는 물맛을 보러 온다. 아주 맛나게 꿀꺽꿀꺽 물먹는 모습이 탱탱하게 물오른 버들강아지같이 싱싱해 보인다.

  “그래, 보건실에 그렇게 오고 싶어서 날마다 어떻게 한다니?

  유독 보건실 정수기 물이 그렇게 맛나다니 봉이 김선달처럼 물값을 받아볼까나!

  물배 터질지 모르니 적당히 마시렴.”

 

<퇴근 시간>    

  하루에도 수십 명이 다녀가는 보건실! 매일매일 벌어지는 그저 보통 수준의 일상이었다. 오늘만 같으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날이라 여기며 이토록 평범한 하루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은 떨쳐낼 수 없다. 보건실은 얼마든지 방문해도 좋으니 큰 사고 없이 내가 대처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루의 흔적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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