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시장 이야기
구제, 보세, 빈티지 등 일명 중고(Second hand)를 뜻하는 제품이 거래되는 중고거래 시장이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까지 확대되어, 2022년 중고거래 시장규모는 작년보다도 4조원대가 더 성장한 약 24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2008년 4조원 규모였던 것과 달리 2020년 5배 성장한 20조원대로 급성장하더니, 지난해에도 4조원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중고시장이 커진 배경 중의 하나는 소비의 중심축으로 등장한 MZ세대를 꼽을 수 있다. MZ세대는 ‘소유보다는 경험’, ‘자신만의 개성적인 이야기 중시’ ‘리셀테크’ 하는 소비패턴을 보인다. 그들은 한정판 의류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의 옷을 사서 입고 경험하는 것을 중시하며 한정판 스니커즈를 제테크의 수단으로 구매하고 다시 되팔기도 한다.
그런데 먼저 중고시장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기에 앞서 구제, 보세, 빈티지처럼 중고제품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달라 개념이 혼동될 수 있는 단어의 뜻을 명확히 하여 중고시장 내에서 MZ세대의 소비패턴으로 떠오르는 중고제품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먼저 중고에 대해 알아보자. 중고란 이미 어느 정도 사용하였거나 오래되었음을 뜻한다. 또 일반적인 의미로는 쓰다가 도로 파는 상품인 '중고품'을 간략하게 지칭할 때 쓴다. 그래서 중고는 한 번 소비자에 의해 이용되었으나 거래될 수 있는, 재차 이용이 가능한 것들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 중고라는 말이 붙은 단어는 상품으로서 거래가 가능한 것들이며 중고시장을 통해 거래된다.
다음으로 중고시장에서 많이 들어봤던 구제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구제란 사전적 의미로 옛적에 만듦. 또는 그런 물건을 뜻한다. 그렇기에 구제품은 옛날에 만들어둔 물건으로 재고품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 하였을 때 팔리지 않아 작년에 제품을 올해 다시 파는 것을 구제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안에는 ‘이미 어느 정도 사용된 것’을 뜻하는 중고품의 의미는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구제가 중고품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구제품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때를 정확히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지만 6.25 전쟁 이후 미국 구호단체로부터 여러 가지 구호 물품과 함께 들어왔던 의류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구호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의류는 동사무소와 같은 관공서를 통해 주민들에게 배급되었지만 쓸만한 옷들은 일부 업자들에 의해 부산 국제시장이나 동대문 시장 등에서 구제 의류라고 이름이 붙여져 판매되어 오면서 ‘남이 입던 옷’, ‘중고’라는 이미지를 달게 되었다.
보세는 관세의 부과가 보류되는 일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관세가 보류된 제품을 말한다. 또 가공 과정에서 흠이 생기거나 규격이 맞지 않아 불량품으로 판정받은 제품을 ‘보세품’으로 간략하게 지칭할 때도 쓰인다. 일반적으로 보세는 국내에서 수출용으로 제작되어 세금이 붙지 않는 옷들이 하자나 계약 취소 등으로 수출되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서 태그를 떼어내고 유통되는 옷들을 지칭하며 주로 동대문, 이태원에서 팔렸다. 과거 국내 시장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OEM 제작이 많았기 때문에 보세는 옷감이나 바느질 등 품질이 우수하고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렴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관세 없이 개인적으로 구매하여 판매하던 보세품을 수입 보세라고 이름을 붙여 남대문, 동대문 등 구제 의류 시장에서 같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보세도 중고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빈티지는 앞서 연재한 ‘나를 찾아가는 슬로우패션, 빈티지’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빈티지(vintage)’란 원래 포도의 수확 혹은 포도의 수확기를 말한다. 특별히 잘된 해의 포도로 만든 와인은 그 연호를 상표(on the Label)에 표시하며 이것을 빈티지 와인이라고 부른다. 빈티지 와인이 숙성된 고급스러운 와인을 뜻하는 것처럼 빈티지는 고유하여 희소성이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해져 고급스러운 것을 뜻하는 의미가 된다. 빈티지패션은 그 빈티지가 존재했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오래된 것에 현대적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느리지만 과거 속에서 나만의 스토리를 새롭게 입히는 슬로우패션, 클래식한 중고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고시장에 거래되는 구제, 보세, 빈티지, 중고제품은 그 제품들이 형성되어 온 고유한 특징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제품들이 중고시장의 카테고리로 묶여 거래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고시장 안에 묶어서 같이 판매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일단 구제, 보세, 빈티지, 중고제품은 그들의 원래 시장의 신제품보다 매우 저렴하다. 심지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제품과 같은 상태일지라도 소비자에 구매되었던 전적이 있었던 경우로 20~3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된다. 고가의 사넬, 구찌와 같은 명품 중고제품도 기존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또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버려질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며 지구를 살리는 환경친화적 슬로우패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이들 시장에서 발견하는 패션은 규격화되어 있지 않아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며 숨겨진 보물과도 같다. 구제 옷 시장과 빈티지 샆에서 나만의 스타일에 맞는 보물을 발견하여 개성 있게 연출하고 의미를 해석해 낼 수 있다.
구제, 보세, 빈티지가 어울려져 있는 중고시장이 이렇게 사랑받게 된 이유도 바로 획일화되는 패션 시장에서 본인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고 문헌
나무위키. 구제: https://namu.wiki/w/%EA%B5%AC%EC%A0%9C
나무위키. 중고: https://namu.wiki/w/%EC%A4%91%EA%B3%A0
박지민(2022). 빈티지 너 뭐 되?: 한대신문 6.7일자
장은진(2022). [유통 트렌드] 중고거래, MZ세대가 '대세' 이끈다: 위키신문 1.21일자
글 : 늘보다
그림: SAMI GASTON https://pin.it/TAmet2A
글은 https://brownstreet.co.kr/ 빈티지 문화 깊이보기 연재 투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