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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10. 2022

2022년의 끝자락에서

아무말 대잔치

 글을 안 쓴지 정말 오래되었다. 그동안 회사 일이 바빠져 퇴근만 하면 잠들기 일쑤였고 1년 가까이 다녔던 독서 모임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폭파되기도 했다. 그 덕에 한창 열심이던 운동에 소홀했고 책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며 그저 일차원적인 자극에만 빠져 살았다. 술이다. 술 마시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무려 60일 동안 글을 안 올렸다며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라는 알림을 보내와 정말 깜짝 놀랐다. 벌써 60일이나 술만 마시고 잠만 잤다고..?! 그래서 아무 글이라도 써볼 겸, 2022년의 끝자락인 만큼 한 해를 돌아볼 겸 60일 만에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1년간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이 좋았고 어떤 슬픔과 힘듦이 있었는지 돌아보며, 그래서 2023년은 어떻게 살아갈 건데?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한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개인적인 일기에 가까운 글이 될 것 같은데…. 안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면 “내가 쟤보단 낫지….”의 “쟤”를 구경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어떤 위안이라도 생기는 글이 된다면 저는 대만족~!)



1. 독서 모임

 아 정말 열심히 했다. 살면서 독서 모임, 아니 그냥 모임 자체를 가입해 본 것이 처음인지라 걱정이 앞섰지만 걱정과는 달리 책이라는 공통분모 하에 이루어진 만남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끈끈했으며 때로는 깃털같이 가볍기도 했다. 애초에 “편함”을 지향하는 모임이었기에 완독하지 않아도 참여가 가능했고 이야기를 들으러만 오는 회원들도 많아서 가입 당시 기대했던 양질의 독서 모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독서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꼭 있었고,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모임 지정 책을 거의 공부하다시피 읽고 생각을 정리해와 의견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 덕분에 함께 책을 읽는 것의 즐거움과  내 생각을 남들에게 드러내는데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더불어 나와 의견이 정 반대거나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재미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의 재미와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켜 가슴이 두근거렸다. 좋은 인연을 꽤나 많이 발굴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책이라는, 독서 모임이라는 연결고리가 빠지면 스칠 일이 없는 인연이었나 보다. 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모임이 폭파되면서 자연스레 모임 사람들과 연이 끊어졌다. 내 일상이 되어버렸던 파이 한 조각이 갑자기 사라지자 좀처럼 헛헛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하여 항상 숙제처럼 읽던 책들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책들만 골라 읽으며 다시 독서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는 중이다. 2023년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독서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 중이다.



2. 부산, 낭만의 부산!

 올해 부산을 두 번 갔다. 여름 휴가철에 한 번,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한 번. 부산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 나만 빠져버렸으니 부산‘과’는 아니고 부산‘에’ 인가? 아무튼 부산, 낭만의 부산이 너무 좋아서 다녀온 여행지 하면 부산만 떠오르는 2022년이다. 부산에 빠져버린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바다가 있고 맛있는 음식들, 젊음, 영화,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필연적으로 술을 부르기에 부산은 더할 나위 없는 낭만 여행지가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화제 첫날, 영화 예매에 실패해 내내 취향에 맞지 않은 영화를 보느라 졸음과 사투했는데 마지막 시간대에 성공적인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날 영화를 보고난 후 격양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곱창전골에 소주를 먹으러 해운대에 갔다. 날도 어찌나 선선한지 칼칼한 전골 국물과 소주가 후룩후룩 잘도 들어갔고, 마침 옆 테이블에는 우리처럼 영화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이 앉아 또 우리처럼 곱창에 소주를 마시며 영화 이야기로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기운이 더해져 우리도 방금 보고온 영화의 미장센이 어떻고 예술 영화란 무엇인지 등등 영화에 심취해 온갖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영화 이야기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날 밤이 나에겐 곧 부산이 되었다. 2023년에도 별일이 없다면 가을에 꼭 부산국제영화제를 가야지!



3. 친구와의 경제 스터디

 재테크에 일자무식이던 나는 어느 날 직장 동료로부터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맨스플레인 폭격을 당했다. 나를 아랫사람 대하듯 신나서 가르치려 드는 그의 모습에 분노가 차올라 이를 꽉 깨물을 지경이었지만 슬프게도 아는 게 없어 쏘아붙이지도 못했다. 그날부로 다짐했다. 경제 공부 열심히 해서 저 자식만큼은 내가 밟아주리라. 그러던 차에 동네 친구가 경제 스터디 제안을 했고 혼자선 막막했기에 마침 잘 되었다 싶어 그렇게 나의 첫 재테크 공부가 시작됐다. 처음엔 친구끼리 스터디라…. 결국 수다만 떨다 끝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의외로 우리는 진지했다. 아무리 친구 사이더라도 나의 무식을 남에게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무식을 감추고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보여주고자 열심히 스터디에 임했고 더 나아가 경제 기사를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을 열어 매일 경제 기사로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까진 그 재수 없는 직장 동료를 이길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지식으로 그 자식을 이길 날이 오지 않을까? 누군가를 밟아주고 싶다는 동기는 꽤나 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한 해였다.



4. 헬스말고 필라테스

 헬린이의 운동 일지가 뜸한 이유 중 하나이다. 최근 헬스가 아닌 필라테스로 종목을 바꿔보았다. 해보기 전엔 과연 필라테스가 운동이 될까 의심이 많았다. 매체에 노출된 모습으로 판단한 필라테스의 이미지는 마른 연예인들의 몸 선 가꾸기용 운동이었기에.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필라테스는 생각보다 어렵고 재미있고 또 고강도 운동이었다. 특히 리포머라는 기구로 운동을 하고 나면 다음날 둔근과 복근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주 뿌듯하다. 무엇보다도 코어를 강화하는 동작이 많아서 열심히 해두면 언젠가 헬스를 다시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렇다 해서 헬스를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곳은 필라테스와 헬스를 모두 할 수 있게 기구가 갖춰져 있어서 필라테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이따금씩 혼자 웨이트를 한다. 그러니 헬린이의 운동 일지는 계속될 예정이다. 지금은…. 조금 쉬어가는 타임~!



5. 지인의 재발굴

 나는 인간관계가 매우 협소한 사람이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지금껏 줄곧 깊고 좁은 관계를 이어왔다. 독서 모임에 가입한 것은 정말 장족의 발전이랄까. 그런 나에게 2022년은 지인 재발굴의 해였다. 아무래도 직장인이다 보니 학창 시절 친구들 말고는 이제 새로운 인연은 대부분 직장에서 시작된다. 직장 동료는 으레 그렇듯 직장에서만 만나고 퇴근하면 내 인생에서 빠지는 존재들이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대부분 그럴 것 같은데, 올해는 좀 예외적인 한 해다. 그저 그런 사이로 지내던 동기와 정말 급작스레, 그리고 급격히 친해져 지인의 범주를 벗어나 현친으로까지 관계가 발전했다. 그리고 약 5년 전 만난 나의 첫 직장 동료들과 뜬금없이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고, 또 뜬금없이 모임 통장이 생기더니 올해만 벌써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29살 여자, 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선 결혼 적령기이며 곧 30대에 접어들어 초조할 나이의 여자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결혼한 지인들만 벌써 4명이다. 모두 다 내 또래이고 그중엔 정말 친했던 대학 동기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하나, 둘 떠나보내며 마음속으로 친구를 잃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보통 가정이 생기면 아무래도 아이를 낳고 자연스레 친구라는 존재는 뒷전이 되곤 하니까.(물론 아닌 기혼자들도 많지만 내 주변은 “보통” 그랬다.)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헛헛한 마음 역시 어쩔 수 없다. 이런 빈자리를 새로운 지인들이 메꿔 주었다. 모델 주우재가 모 유투브 방송에서 나이가 들수록 연애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로 어릴 땐 열에 하나만 맞아도 go!였는데, 이제는 열에 하나만 안 맞아도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을 들었다. 모든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릴 땐 친구도 그냥 막 사귀었는데 지금은 나랑 공통분모가 없으면 쉽게 다가갈 생각이 안 든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협소한 인간관계는 안 그래도 협소한데 더 줄어들기만 하고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인들의 재발굴은 참 행운이었다. 비록 대부분 거지 같은 경험을 선사했지만 직장이라는 매개체 덕분에 내 사람을 만들 기회를 얻었다. 퇴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달까.



6. 브런치

 2022년에서 빼놓을  없는 것은 역시 브런치다. 물론 최근엔  뜸했지만…. 그래도 근래에 이렇게 뭔가에 집중해  것은 브런치가 유일무이하다. 매년 다이어리에 일기를 썼는데  잊을만하면  번씩 “언젠가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지.” 따위의 다짐을 적어놨더라. 다짐만 차곡차곡 쌓아두다 마침내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온갖 책을 읽고 온갖 생각을 글로 표출해냈다.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내가 글을 쓴다는 행위를 한다는 자체가 뿌듯하고 즐거웠다. 어떻게 보면 진한 취미  가지를 발견한 셈이다. 그리고 오랜 꿈인 소설 쓰기도 시작했다. 9월에 술에 취해 즉흥적으로 단편 소설을 슬쩍 발행했다가 깨자 어쩐지 부끄러워져 지금은 발행 취소를 해둔 글이 있는데, 2023년엔  다듬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 다시 발행할 계획이다. 새삼스레 세상 모든 창작자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워진다…!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낸 것 같은데 이렇게 또 추려보니 2022년을 대표할 만한 키워드가 6개밖에 없다. 물론 아직 올해가 3주 정도 남았지만. 더 치열하게, 더 기억에 남는 삶을 살 걸 후회하면서도 돌이켜보니 나 저렇게 행복했구나, 싶은 날들도 많았다. 한 해를 돌아보니 2023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대충 스케치가 그려지며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 아, 그리고 내년 6월부터 만 나이가 적용되는 거 다들 아시는지! 나는 내년에 6개월간 30대로 살다가 다시 만 28세가 되어 20대로 컴백한다! 수명이 연장되는 HP 포션을 마시는 기분이다. 다시 1년여간의 시간을 벌었으니 더욱 맛있고 좋은 술들로 추억을 만들 계획이다. 독자분들 모두 행복했던, 행복하지 않았더라도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되었던 2022년이었길 바라며 남은 3주 동안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잘가라,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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