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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Apr 18. 2024

일상 시계의 변화

등교 도우미, 베이비 튜터

3월부터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램수면 행동장애'가 있는 나에게 수면의 질은 굉장히 중요한데도 오래된 습관에 눌려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늘어지고 불규칙했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남편과 둘이 남으니 의식주 모두가 단촐해졌는데도 그랬다. 고백하자면 둘 다 각자의 일을 마치고, 하루의 마지막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 나란히 OTT를 보며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떠는 시간이 원인이다.


아이들을 보면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나는 이참에 등교하는 저학년 여자아이의 등교 도우미가 되기로 했다. 나는 아침 6시 55분에 새로운 가정에 들어가면서 출근준비에 정신없는 젊은 부부와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들과 "굿 모닝~~!"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곧장 건조기 안에 있는 세탁이 완료된 세탁물들을 널찍한 소파에 올려놓은 후, 급하게 아침식사를 하는 푸릇푸릇한 가족의 뒷모습에 한 번씩 눈길을 주며 빨래를 갠다. 다정한 젊은 엄마는 아직 새근새근 자고 있는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 잠결에나마 사랑의 키스와 포옹으로 귓가에 아침 인사를 남기고, 셋은 어김없이 매일매일 허둥지둥 집을 나선다. 현관까지 쫓아간 나는 그들에게 파이팅! 을 날리고 돌아와 식탁에 남은 아침식사의 흔적을 치우고 나머지 세탁물들을 단정하게 개어서 있어야 할 곳으로 넣어놓는다.


새촘한 9살 여자아이는 대부분 스스로 일어나 학교 갈 차비를 갖추고 거실로 나와 인사를 한다. 함께 아침을 먹으며 나는 세상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 이야기를 듣는다. 약속된 등교시간 15분가량을 남겼을 때 얄팍한 영어 동화책을 한 권 읽어주고 함께 집을 나서는데 여기까지가 내가 하는 일이다. 사실 아침을 먹고 함께 등교하면 끝인데, 넘치는 나의 열정으로 영어 동화 읽기를 자청하니 엄마도 아이도 좋아해서 흐뭇하다.


이곳저곳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떼거리를 만나는 일은 엄청나다. 첫날의 흥분이 잊히지 않는다. 그 에너지! 그 어여쁨! 바람에 흔들리는 꽃밭 같은 움직임 속에 섞여 아이와 눈 인사하고 헤어지지만 나는 정문까지 작은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집에 도착하면 오전 9시라니! 몇 달 전 나는 이 시간에 멍한 상태이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해를 보고, 파라솔과 우산을 번갈아 쓰며 집으로 20여분을 걸어서 온다. 그리고 6시간 반 후에 나는 32개월 남짓한 남자아이를 만나러 다시 집을 나선다. 새로운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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