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란 기로 속에서
선택이란 기로 속에서,
그리던 꿈
오늘 가고 싶었던 대학원의 전공 합격증을 거절했다.
해외유학이라는 꿈을 품고 지낸 지 오래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가장 빨리 발 뻗고 싶은 곳이었다. 이 꿈이 흐려질까 봐 이전에 살던 집안 곳곳에는 대학원을 가리라는 굳은 다짐의 글귀와 대학교 캠퍼스 사진들을 냉장고, 책상벽, 화장실 문위에까지 붙여놓았다. 애플워치의 배경부터 노트북 배경까지 가고 싶은 나라의 사진으로 설정해 놨었다.
학비정도는 아주 딱- 맞게 돈을 모았다. 그것도 아주 딱.
A대학교, B대학교에 붙었다. A학교는 수도에 위치해 있어 학비와 기숙사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B대학교는 지방에 있어 현재 가진 돈을 다 사용한다면 유학을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간사하게도 A대학교, B대학교 합격증을 가지고 나니 더 좋은 조건을 가진 A대학교만 눈에 들어왔다.
묘한 고집도 있었다. A학교를 가기에 학비와 생활비가 당장 부족하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나는 A학교의 전공을 선택하지 못했다. 2번의 지원, 2번의 합격, 2번의 취소. 유학길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다.
대안의 길
살다 보면 꿈 이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생긴다. 지키고 싶은 가치와 사람이 생겼고, 함께하는 길을 위해 다른 길들을 기웃기웃 들여다보았다.
지금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차선이었다.
어쩌다 보니, 차선의 선택인 일에서 변수가 생겨 원하던 일과 상당히 달라졌다.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까지 내가 내 업을 위해 연결성을 가지며 살아야 할지도 동시에 고민되었다. 마음을 다 잡고, 주어진 기회에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차선을 선택했다.
오늘 대학원을 포기하며, 묘한 감정에 글을 써본다. '무리해서라도 A 대학교에 가는 것이 맞았나?', '준비가 돼있지 않음을 받아들이며 차선을 선택한 것이 옳았나?' 어떤 것이 가까운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다. 왜냐하면, 지금은 현재의 상황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B대학교를 가기에는 A대학교를 가고 싶었고, A대학교를 가기에는 주머니 속 사정이 여유치 않았고, 지금의 주어진 선택지에선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N 년 후에서야 지금의 현재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선택이 오히려 잘 된 것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도록, 지금 주어진 기회를 100으로 활용해야겠다. 섣부른 판단이지만, 지금 주어진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더 괜찮은 길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