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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Apr 14. 2024

선의의 전염

보여주기식이래도 좋아

선의 전염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적 있다. 도보로 통학이 가능한 거리의 초중고를 다니다, 대학을 가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했다. 편도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환승까지 해야 했기에 처음엔 지겹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언제 학교에, 집에 도착할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대학 입학 후 만난 동기와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그녀가 버스를 타자마자 기사님께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인사하는 모습을 봤다. 기사님이 인사를 받아주건 말건, 다른 승객들이 보든 말든 언제나 그녀는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그러다 보니 나도 뒤이어 인사를 안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쑥스러움과 달리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면 왠지, 기사님이 나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실 것만 같았다.


언제 한 번은 농활을 다녀온 뒤, 농활에서 학우들과 따온 사과를 학생활동 운영자금으로 모으려고 캠퍼스 안에서 판매한 적이 었는데, 팔고 남은 사과 중 일부를 우리가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 가기 위해 그녀와 버스를 탔다. 그날도 그녀는 어김없이 "안녕하세요!"하고 기사님께 큰 소리를 인사를 드렸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갑자기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기사님께 사과를 내밀었다. "이거 저희가 농활 가서 따온 건데, 맛있어요!" 하는 귀여운 설명과 함께. 그녀의 돌발행동에 비상정지등이 들어온 것처럼 기사님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웃으며 고맙다고 사과를 받으셨다.


그때 나는 그녀가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 후 그날처럼 당일 팔고 남은 사과 중 일부를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던 날, 나 홀로 버스를 탔지만 나도 용기를 내 기사님께 사과를 드려봤다. 역시나 그날의 기사님도 적잖이 당황하셨지만, 잘 먹겠다며 웃으며 받으셨다. 뒤에 다른 학생들이 보건 말건 상관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선의의 영역에서는 스승이다.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학생 때 했던 봉사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은 단 하루, 주말에 했었던 고속도로 톨게이트 모금활동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하이패스 차선이 많아지기 전이라, 사람이 직접 통행료를 정산하는 출구가 많았다. 그날 봉사자의 역할은 모금함을 들고 정산 이후에 나온 거스름돈을 기부하게끔 유도하는 일이었다. 주말 아침 일찍 복지관에 도착해,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봉고차로 봉사활동이 예정된 톨게이트로 향했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매번 아빠 차로 고속도로를 통과하며 통행료를 정산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저 직원 분은 어디로 들어왔다 나가실까 궁금했는데 그날의 봉사활동 덕분에 톨게이트 아래의 지하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지하통로를 지나, 할당받은 입구 한 곳으로 그날의 봉사 파트너와 나가 섰다. 그렇게 봉사활동은 시작되었고, 정산을 막 끝낸 운전자에게 좋은 일에 기부하시라는 느낌의 멘트를 하면서 기부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어서였는지, 생각보다 통행료 정산을 끝내자마자 창문을 올리고 쌩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어디까지나 기부란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일이니 야속하다 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입구소 직원분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일 할 때, 기부금 잘 넣어주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요?"

"누군데요?"


"애들 데리고 탄 부모들. 좋은 일 하는 거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잖아요."


빨간색 하트 스티커가 붙여진 모금함을 내밀던 우리를 보며 부모님들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기부함에 잔돈을 잘 넣어주셨다. 어떤 부모님은 뒤쪽 창문을 열어, 아이가 직접 잔돈을 넣게 하기도 했다. 보여주기 식이라 비난할 일이 아니었다. 남을 돕는 일도 어쩌면 배워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걸 알고 나서는 새로운 차가 들어오고 운전자가 입구소에서 통행료를 정산하고 있을 때, 파트너와 곁눈질로 차 안을 살짝 들여다보며 둘이서 조용히 떠들었지. "저분 넣어주실 것 같지 않아요?" "응. 뒷 자석에 애들 있어요." 이러면서.


그래서 그런 차일수록 더 많이 웃고 더 큰 목소리로 멘트를 했다. 그러면 열의 아홉은 꼭 기부함에 잔돈을 넣었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버스를 탈 때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고 기사님께 인사를 건넨다. 대학생 때보다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이젠 거의 반자동적으로 인사가 튀어나온다. 인사의 마무리가 느낌표에서 마침표로 바뀐 정도랄까.


작은 소도시에서 일했던 때에는 종점에 내렸던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엔 하차할 때도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하고, 탈 때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어차피 내릴 건데, 부끄러운 것보다 뿌듯함을 택했다. 나보다 더 이른 시간, 더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을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누군가 힐끗 이상하게 보더라도 상관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처럼 전염되길 바랐다.




수도권으로 발령받아, 여러 곳으로 출장을 다니다 보니 하이패스가  여기저기 빠르게 다닐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가끔은 푼돈이라 할 수 있는 천 원 미만의 통행료도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빠른 정산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이런 곳에서 처럼 모금을 더라면, 5천 원이나 만 원을 내민 사람들의 잔돈을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긴, 이곳에선 그랬다간 뒤차에게 욕을 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가 선의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줄어든 것만은 확실하다.



회사 사무실의 내 책상에는 <후원자님, 만나서 반가워요!>라는 멘트와 함께 해외결연 아동의 사진이 붙어있고, 재단에서 보내는 정기 간행물은 사무실 주소로 받는다. 내 자리를 지나가는 누군가가, 내 우편물을 먼저 받은 누군가가, '이 사람 좋은 일 하는 거 티 내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노리는 건 '아, 이렇게 기부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하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볼 누군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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