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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y 26. 2024

당연한 안부는 없어요

예상 밖의 등장인물이 되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이에게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곤 한다. 잘 지내고 있냐고, 갑자기 네 생각이 나 연락한다고. 나는 그런 점에 있어서는 큰 용기가 필요치 않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그 시간 자신이나 더 돌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좋은 추억이 많았던 경우에 최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더라도 나는 닷없이,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에게 안부를 묻곤 한다.


다음 주의 출장을 앞두고 기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기차 시간까지 한참이나 남아있었던 탓에, 홀로 저녁을 먹고 역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곤 벤치에 앉아 그간의 안부가 궁금했던 이들에게 짧은 전화를 걸었다. 직장의 특성상 동료들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은 어른들이었는데, 그들과 오래 지내다 보니 생각 외로 어른들이 누군가로부터의 안부연락을 꽤 기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꾹꾹 참아낸 그리운 마음을 술 한 잔에 기대다 문득 네가 떠올라 전화를 건다고. 넌 어떻게 그새 연락 한 번이 없냐고. 그렇게 푸념을 털어놓는 이들을 자주 보아왔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지는 마음과 더군다나 감사실에 와 나에게 연락하기가 부담스러워졌을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시간이 될 때 그들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누군가는 저녁 모임자리에서 내 전화를 받겠다고 식당 밖에 나와 전화를 받고, 누군가는 지금 어디냐 물으며 당장 만날 수 있으면 밥이라도 먹자고 반갑게 응답했다. 전화를 걸었던 이들 중에, 전화를 받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오래 통화하지 않아도 짧게나마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그간의 생사를 확인하는 짧은 5분가량의 통화가 즐거웠다.



출장이 많은 업무다 보니,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을 여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와중에 틈이 생겨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땐 가만히 있고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몇몇의 이름이 스친다. 그렇게 떠오르는 이름들을 두꺼비집 쌓듯 곱게 손등에 쌓아놓고 무너지지 않게 심스레 손을 빼낸다. 그리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자리를 뜬다. 언젠가 파도가 치고 들어와 무너질지도 모를 그곳을.




중학생 시절, 나의 교우관계는 견고하리만큼 돈독했는데 안타깝게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친구들과 동떨어져 나 홀로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공학이었지만 여중을 다니던 애들이 많이 진학한 학교였고, 혼성반이 아닌 여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반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여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반이니 덜 시끄럽고 차분한 면학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반 아이들의 절반이 남학생에 가까운(?) 여학생들이었다. 적응되지 않는 분위기와 더불어 그때 만나게 된 친구들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돈독한 교우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았고, 여중 생활을 거쳐왔던 아이들은 내가 원했던 친구관계보단 가끔은 서로 욕도 할 수 있는 가벼운 관계를 원했다. 내가 지내고픈 진솔한 관계에 대해 얘기했을 때에, 그들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부담을 주려고 친구가 되려 했던 건 아닌데, 나는 그렇게 서로에게 편히 욕이나 할 말을 다하며 지내는 친구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시간이 지나, 나름 괜찮은 단짝 친구를 얻긴 했지만 슬프게도, 그때에 나는 일찌감치 상대에게 기대하는 습관을 버리게 됐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인간관계에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이른 나이에 알아버려서.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것들을 해줄 때에 나는 절대 일말의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저 내 마음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 것일 뿐, 저는 그쪽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이런 걸 왜 주냐고 외려 되묻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서글프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거둔 지 너무 오래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그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마저 거둬버리지 않은 것. 그래서 아무런 기대 없이 누군가에게 안부를 건네는 일이 나에겐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가끔그런 안부 인사를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업무가 바쁠거라 예상되는 때엔, 마냥 지금 나의 안부에 응답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닐 것 같아 그런 이들에겐 연락하고픈 마음을 잠시 눌러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무턱대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던 날처럼 그들이 나의 안부를 묻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 주엔 출장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배는 그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며 아침 일찍부터 톡을 보냈고, 또 어떤 선배는 네가 생각날 때 보낸다며 장문의 메일로 안부를 물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까마득히 어린 후배로부터 안부 인사가 들렸다. 이렇듯 희한하리만큼 안부가 몰리는 때가 있다. 기대에 없던 등장인물들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어 감사를 담은 답장에, 먼저 안부를 묻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보탠다.




다음 주 오랜만의 출근엔, 점심 저녁으로 이미 약속이 다 차 있다. 벌써부터 피곤함이 예상되지만, 어쩌면 그들의 그런 약속 또한 기대 없이 살아온 나의 안부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남겨둔 기대와 체력을 지금 활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손등에 고이 모아 둔 이름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틈틈이 다시 손을 넣고 이름들을 다독인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손등에 덮여있는 이름이었을 테니.


예상에 없던, 나도 누군가가 챙겨준 이름이 되는 날. 기대는 없어진 지 오래지만, 기대가 없음으로 인해 감사함은 늘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논리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도 당연하지 않으며, 안부인사를 받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은 아니니. 그런 인사들이 쌓이고 쌓여 관계는 이어진다. 그러니 그 관계도 당연하지 않음을 잊지 않로 한다. 예상 밖의 등장인물들이 되고 되어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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