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첫차, 그리고 첫차를 타기 위한 새벽 4시 기상.출장을 위해 7시 20분 첫 비행기를 타야 했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이 몸은 4시 20분에 맞춰놓은 알람보다 역시나 먼저 눈을 떴다. 밖이 캄캄할 때 눈을 떠본 게 얼마만인지. 미숫가루를 물에 태워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5시 30분 첫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나섰다. 습한 새벽공기에 대충 하고 나온 머리는 금세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똑같이 습한 공기였어도 새벽에 맡는 냄새는 사뭇 색달랐다.
오랜만에 본 보랏빛 하늘. 검푸른 하늘과 붉은 해가 만들어 내는 보랏빛 하늘 아래, 묘한 기운을 얻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니 당연히 앉아갈 것이라 생각했거늘, 지하철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이 시간에 이렇게나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공항 가는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덩달아 발맞추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은 느낌. 부랴부랴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엔 여름휴가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다지도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니.
이미 머리는 엉망이 되어있었고, 졸린 눈으로 두드렸던 화장도 땀에 녹아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앞뒤가 모순적이지만 이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피곤한 각성'상태. 무거운 몸과 눈꺼풀을 부여잡고 공항에서 만난 부서장님들과 함께 비행 편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나와 똑같이 그들도 말하길,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줄 몰랐다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반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주고받았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나는 취업준비에 매진하고자 학교 어학당에서 하는 첫 수업을 신청해 뒀고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학교를 가려면 5시에 일어나서 6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아침, 점점 더 새벽은 어두워졌고 서글프다 생각하기엔 나보다 더 이른 시간 길을 나섰을 버스 기사님을 보며 함부로 힘들다 말할 순 없었다. 그렇게 버스를 탄 뒤, 곯아떨어져 한참을 가다 환승해야 할 정류장에 내렸다. 그러다 환승버스가 오기 전까지 시간이 한참 남은 때엔 정류장 앞 빵집에서 커피를 사 먹기도 했다. 역시나 '피곤한 각성'상태. 커피를 내려주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또 버스 기사님을 떠올렸다. 이 친구도 얼마나 일찍 일어났던 걸까. 버스를 기다리며 매일 생각했다. 언젠가 이 시간이 제발 보람되었으면 좋겠다고.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서글픈 경험이어도 나중엔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른 새벽 출장을 떠나며, 오랜만에 그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정말로 지금은 추억이 된 그 시간을 생각하며, 그때의 촌스러운 취준생은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는 직장인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겠지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겨우 붙잡은 정신줄로 비행기에 올라탔고, 출장지로 오가는 내내 비행기에서 곯아떨어졌다. 역시 새벽 4시의 기상은 하루를 마비시키기엔 충분했다. 아니, 심지어 그다음 날까지. 그러나 매일 첫차에 몸을 실는 이들이 봤을 때, 나는 복에 겨운 사람이겠지.
다시 김포공항에 내려 기숙사까지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하루가 참 길었다고. 시간은 벌었으나, 체력은 잃은 느낌.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공항을 가는 일은 멀리 여행을 떠날 때 이후론 오랜만의 일이라, 출장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설렜던 것도 사실이다. 새벽은 피곤하지만, 역시 사람을 각성시킨다.
출장에서 다녀온 다음날 또 쓸데없이 새벽 일찍 눈이 떠졌고, 나는 꿈에서 새벽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다. 역시 자성의 시간은 밤보다, 새벽에 가지는 것이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닫는다. 지금의 이 시기도 언젠가 경험보다 추억이 되어, 어느 날의 새벽 아침에 떠오르기를.
또 다른 새벽에 이 글을 다듬는다.
가장 이성적인 시간에 가장 감성적일 수 있음을. 모순의 시간이 주는 경험이 언젠가 또 추억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