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w Aug 04. 2024

어떤 순간에도 나부터

진심의 근원에게

언제부터 나는 이리도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책 잡히기 싫어하는. 배려심으로 위장해 언제나 스스로를 후순위로 두었다. 주관이 없고, 의견이 줄고, 목소리는 작아졌다. 조금씩 드러내는 목소리도 이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려해 다시금 대화의 내용을 고쳐 말하거나, 마음을 드러내 보인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생활반경을 바꿔 낯선 곳에 찾아왔으니, 선택에 의한 책임을 지기 위해 더더욱 목소리는 약해져야만 했다.


돌이켜보니,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노력을 들여 나는 나를 뒤로 밀어냈다. 습관성 후자되기. 어쩌면 그로 인해 지금껏 많은 사람들을 잃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을 잃지 않으려다 나를 잃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잃은 채로 위기를 모면하고 상황을 해결하고 나면, 안도했지만 또다시 외면받은 내가 가끔 가엾기도 했다. 그러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배려심을 발휘하며 위하려 했던 이들이 나를 나보다 더 귀히 여기고 있었다. 주객전도인가. 나보다 타인이 나를 더 위하다니. 나는 또다시 나에게 미안해졌다.




문득 10년 전의 이맘때쯤 무엇을 하고 있었나 궁금해졌다. 나는 입사 후 처음, 그리고 동생과 함께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던 이스탄불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고, 당시 디지털카메라에 담아둔 그때의 여행사진들을 오랜만에 펼쳐보았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외모에 비해 해맑기 그지없는 얼굴. 한국에선 입을 수 없는 짧고 화려한 옷을 입고 이국의 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어린 날의 나. 그때에 비해 직장에서의 위치도 나아지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수도 훨씬 많아졌지만 그 사이에 나는 작아졌다. 빠진 젖살과 함께 무엇이 함께 빠져나가 버린 걸까.



나에게 한 편의 시 같은 노래가 있다면, 그건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란 노래다. 출장을 나가서나, 홀로 생각에 빠진 밤마다 이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그중에 가장 쓰렸던 가사는,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겨우, 고작, 작금의 내가 되려고 지금껏 아팠다니.


이스탄불을 누비고 있던 그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다. 네가 생각했던 10년 후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물론 예상했던 모양과는 다르겠지만, 촌스럽기 그지없던 그 아이가 꿈꿨던 어른의 모습이 조금은 되었을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고, 촌스러움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금보다는 더 많이 그리고 당당히 내 얼굴을 프레임 안에 담아둔 것을 보아하니, 그때의 아이가 보았을 때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은 10년 전의 자신에 비해 멋져 보였을 텐데.




유튜브에서 [아이와 나의 바다]를 찾아 듣다가, 우연히 보았던 누군가의 댓글이 기억 난다.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게 아니라, '무려'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거라고.


'그러나'로 시작한 노래는 '그럼에도'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다고 시작한 노래는, 그럼에도 또다시 헤맬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안다고 말하며 끝난다. 그리고 나를 모른척하지 않겠다는 노랫말처럼 저 심연에 자리한 진심의 근원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목소리를 내가 들었다고. 아니, 듣겠다고. 배려라는 귀마개를 벗어던지고 너의 말을 듣겠노라고. 시간은 지금도 쌓인다. 그럼에도 쌓여가는 시간 속에 나를 잊은 채 파묻혀 살지 않기를. 10년 뒤의 또 다른 나에게 멋져 보이고 싶어졌다. 겨우 내가 아닌, 무려 내가 되어있었으면 해서.


작가의 이전글 신호등 아래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