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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Aug 18. 2024

100개의 기록

자식 말고 자신 육아일기

100번째 글이다. 글을 처음 이곳에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주도 쉬지 않고 매주 한 편 이곳에 내 생각을 남겼다. 정신없이 바쁘고 잠식당할 만큼 슬픔에 잠긴 주도 있었지만,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내 마음을 여기에 기록했다. 기특한지고. 이 나이에 이런 꾸준함을 보이다니. 이리 끈질기게 무언가를 해본 것이 얼마만인가. 투덜대며 해내는 회사생활이야 먹고사는 문제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매주 내 생의 기록을 남기는 일은 오로지 나의 의지만이 그 재료였다. 그렇게 도달한 100번째 글.


누군가 내게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냐 물었을 때, 그때마다 똑같이 대답했다. 하기 싫은 출근도 매일같이 해내는데 몇 개 되지도 않는 좋아하는 일을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싶지 않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지금껏 차곡차곡 쌓여있는 글들을 근거 삼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마다 쑥스럽지만 당당하게 '글을 쓰는 일'이라 답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대체로 나를 신기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그 신기하게 여기는 느낌 썩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특기가 아니고 취미이니,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저 나를 아끼는 방식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육아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지금도 나는 나를 키워가는 중이라고. 그런 내(네)가 좋아하는 일인데, 어떻게든 이번 주도 나(너)의 이야기를 남기도록 해줄게-하는 마음으로 나는 나 자신의 육아일기를 써 내려간 셈.



아이러니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말을 잘 못한다고 느껴진다. 의도와 다른 표현이 튀어나거나, 말을 잘하지 못할 것 같아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도 많다. 상황대처능력이 떨어진 느낌. 어떨 때는 말을 더듬기도 하고,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느라 한참을 고민하기도 한다. 살며 경험은 늘어가고 있는데, 왜 말은 점점 더 어설퍼지고 퇴화하는 걸까. 그래서 더더욱 글을 쓰게 된다. 나는 이제 순간의 내 감정을 파악하는 속도가 더뎌졌다. 상황을 판단하고 타인의 감정을 살피느라 내 감정을 대변하는 일에 순발력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글이라도 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글로 토해내다가 그때의 내가 느낀 감정의 색을 뒤늦게 인지하곤 했다. 늦게서야 대처능력이 떨어져 곤란해했던 그때의 나를 달래주는 마음으로 글을 다.




감사실에 근무하며, 수많은 보고서를 접하고 보고서를 써야 하는 일이 생긴다. 감사의 용어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떨 땐 포괄적이며 또 어떨 땐 아주 구체적이다. 언제 한 번은 공문을 작성하다 부당청구를 지적하며 부적정 사례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언급하지 말고, 그냥 '사실과 다른 증빙'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해."라며 간결한 표현을 찾아낸 그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납득시키고 싶어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일까.


감사담당자의 글은 그간 써 내려간 내 글들과는 성격이 달라서, 나는 점점 더 표현에 조심스러워지고 신중해진다. 어떨 때엔 가장 적한 하나의 단어를 찾기 위해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사무실에선 가장 떳떳한 형태의 글을 남기기 위 매진하다, 기숙사로 돌아와 형식도 표현도 자유로운 나의 글을 쓰 보면 자유로움에 해방감을 느끼다가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일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가끔은 이곳에 글을 남기는 일도 마치 감사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바쁜 일상에 치여 그저 쉬고 싶은 마음에 이번 주는 글 쓰는 일을 쉴까 고민했던 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주도 빠짐없이 글을 남겼다니, 잘 쓰건 못 쓰건 나의 지구력을 확인했단 사실이 조금 기쁘다.



고등학생 때, 1년에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체력장 시간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그중에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던 종목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오래 달리기'였다. 항상 반에서 5등 안으로는 들어왔으니까. 친구들과 일체의 대화 없이 나는 그저 묵묵히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10바퀴가 넘는 운동장을 돌고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마침내 얻은 휴식과 뿌듯함에 조용히 안도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래, 나는 그런 지구력이 있는 아이였지. 100번째 글을 쓰며 오랜만에 다른 형태의 내 지구력을 검증한 느낌.




<시대예보>의 저자인 송길영 작가님의 말이 떠오른다. 고유성이 진정성까지 가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요구된다는. 고유함은 나의 주장이고, 진정성은 타인의 평가이기 때문이기에. 진정성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나의 고유한 주장에는 흔들림이 없었으면 한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하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사람은, 모두가 입을 모아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육아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니, 앞으로도 열심히 육아일기를 써 내려갈 수밖에. 나라는 아이가 얼마나 고유한 아이인지를 해상도를 높여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러다 한참 후의 어느 날, 스스로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었는지 그새 자란 아이가 이 육아일기들을 읽고 위로받기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자식 말고 자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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