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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Oct 06. 2024

시시하지만 부끄러운

낙엽이 쌓여 다시 거름이 된다

휴일로 바뀌어버린 10월의 첫날을 앞두고, 서울에 살고 있는 친한 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계획된 일정이 있는 듯했지만 그녀는 덥석 내 제안을 받아 주었고, 우리는 우리 둘 모두가 좋아하는 콩국수를 먹으러 콩국수 맛집에 가자는 핑계로 서울에서 만났다. 아직 이곳에서 이방인에 가까운 나에게, 동료들은 쉬는 날마다 서울 구경을 가라고 했지만 역시 만날 사람 없이 혼자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서울에 가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서울은 사람도 많고 무섭다구. 그래서 휴일에는 지금 지내고 있는 인천을 맴돌았다. 그러나 마침 선선해진 날씨, 그리고 갑작스레 덤으로 얻은 휴일. 무엇보다 내 데이트 신청을 흔쾌히 수락해 준 그녀 덕분에 지하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설렘으로 지루함 없이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만나 콩국수를 먹고, 서울 시내를 산책 삼아 돌아다니다 커피를 마시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오디오가 빌 틈이 없이 떠들다 마지막 코스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지나는 가봤지만 처음 들어가 본 곳. 오랜만의 서점이었다. 동생은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이끌어갈 만큼 독서에 진심인 친구였고, 이런 책책박사와 함께 서점 데이트를 하는 것은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서로가 재밌게 읽은 책을 공유하고 추천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이야기했다. 그 큰 서점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다리가 아픈 줄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활자에 둘러싸여 시간이 가려졌던 걸까. 그저 오늘 기숙사에 돌아가게 되면 책을 읽어야지, 편하게 오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다시금 한참 동안의 지하철을 타고 기숙사로 돌아온 저녁, 이북리더기 안의 내 서재에 주섬주섬 책을 담았다. 그리곤 한참을 앉아 책을 읽었다.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 손으로 이북리더기를 오래 들고 있었더니, 한쪽 어깨가 뻐근했다.




그리고 또다시 하루만의 근무를 끝으로 다시 찾아온 휴일, 오전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연말까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에는 열심히 살기로 한 내 결심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아침잠이 없어졌으니 일찍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했고, 오후엔 이번 달에도 역시나 출장이 많을 듯하여 미리 일을 좀 해두려 출근을 하기로 했다. 좋았어, 오늘도 역시 해 떠있는 시간은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 아침잠이 없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꽤나 젊은 사람들이 영화관에 한둘씩 자리 잡았다. 대부분 혼자 온 사람들. 아침 일찍부터 혼자인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대단히 공감되면서도, 평범하다고 볼 순 없는 삶을 다정하게 소개하는 영화였다. 틈틈이 웃고 짬짬이 울컥했다. 빛나는 두 청춘이 아름다우면서도 영화 속 인물 중에 나를 대입해보려 하니, 아무래도 나는 주인공보단 편견 가득한 그들의 주변인들에 머무를 것 같다는 사실에 조금 슬펐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오후엔 출근을 했다.



이러나저러나,

이다지도 시시콜콜한 일상들의 기록.

얼마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이 친구는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그리 소개하면서도 그들의 대부분은 내 글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보여주지 않았지.


칭찬인 줄 알면서도,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이 받아들일 생각과 또 어떤 글을 쓰냐는 그들의 구체적인 질문들에 괜스레 두려워진다. 이런 시시콜콜한 글인 걸 알면 어쩌나. 그리 대단한 기록도 아닌데, 게다가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진 않은데 인사치레인양 기회가 되면 보여달라는 말에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곤 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끔은 조금 지질하기도 한 일상들. 무탈로 위장한 견고한 껍데기 안에, 고이 갖고 있던 연약한 생각들. 조금은 나약한 치부를 들키는 것 같아 그럴 마다 가급적, 최대한 미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그 마음마저 여기에 남겨둔다. 훗날 나를 아는 누군가가 뒤늦게 이 글을 보고, '이래서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건가', '별 거 없군'하고 생각해도 괜찮다. 이 또한 나인 것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대사.

"네가 너인 게 네 약점이 될 순 없어."


그래. 내가 나로서 남긴 흔적들이 어떻게 약점이 될 수가 있겠어.


이제 완연한 가을이니, 곧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겠지. 흩날리는 가벼운 낙엽들이 쌓여 다시 그 나무에게 거름이 돼주지 않으려나. 그러니 이 힘없는, 그러나 한때는 나에게 푸른 초록이었던 이 기록의 합이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나인 것을. 내가 나였던 것들이, 내 약점이 될 순 없어.


하지만 또 어쩌겠어.

시시하지만 부끄럽기도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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