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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Oct 13. 2024

라면이 싫어

라면이 아니라면,

사회초년생이 되어 처음으로 집을 나와 살게 되었을 때에, 찬장에 라면을 봉지 색깔별로 쟁여뒀었다. 퇴근 이후에, 어제는 저것이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먹자-하고 라면 봉지를 뜯어 팔팔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냉동실에 얼려둔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같이 끓여 먹을 때면, 타지에서 외로이 살고 있는 20대 중반의 사회초년생에겐 그만한 위로가 없었다. 그렇다고 밥을 안 해 먹은 것은 아닌데, 퇴근 후엔 라면이 유독 당겼다. 뜨거운 라면냄비를 냄비받침대에 올리고 TV를 틀면 보통 그 시간엔 생생정보통이 방영곤 했다. 맛집을 소개해주는 코너들을 보며 '부럽다'를 연신 내뱉었지만, 뜨듯한 라면 한 그릇이면 화면 속 이들이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10년이 지난 지금, 애석하게도 나는 라면을 예전만큼 먹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라면이 좀 싫어졌다. 특히나 야근을 할 때나, 조리기구가 없는 기숙사에선 컵라면을 주로 먹었는데 환경호르몬이 양념으로 섞여있는 듯한 느낌과, 먹어도 기분 좋게 배부르지 않은 그 불편한 포만감이 싫어져서. 그래서인지 기숙사에는 사다 놓은 지 한참 된 컵라면이 아직 개봉되지 않은 채 늘 같은 자리에 놓여있다. 분식집에 가더라도 라면보다는 우동이나 국수. 아니, 가급적 밥을 먹으려고 한다. 이젠 나도 마냥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 나이가 아닌 데다, 외지에서 홀로 살고 있는 만큼 한 끼를 먹더라도 더 잘 챙겨 먹고 싶으니까. 그런 내 마음이 입맛으로 반영된 건지, 라면이 예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오래전에, '과장님이-라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흔히들 손만 뻗으면 찾을 수 있는 라면처럼, 사람들이 나를 아주 간편하게 찾는 것 같은 마음에 써버렸던 글.

'ㅊ과장이라면 내 얘기를 잘 들어줄 거야', '내 고민을 털어놓아도 될 거야',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


당시 많은 이들이 나를 인스턴트처럼 즉각적으로 투입이 가능한 대체품으로 여긴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분명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당시 한 두 명이 아닌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하소연하듯 문제를 해결해 달라 아우성이니 내 입장에선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또한 일종의 관심과 인정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이듯 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라면이면 어떤가. 배고 우는 이들에겐 얼마나 맛있는데. 잠시라도 그 허기를 달래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라면 같은 인스턴트보다는 좀 더 밀도 있고 주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가볍게 손 뻗어 먹고 치울 수 있것이 아닌, 오래 뭉근하게 자리 잡을 귀중한 것이 담긴 사람. 그리고 이젠 정말 아무거나 먹고 소화 수 있는 나이도 연차도 아니니까.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애정과 관심은 포기해야겠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흔한 취향이 라면이거늘. 그러나 이젠 그런 간편한 사람보단, 진정으로 나의 진가를 알아주고 오래 함께이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영양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초년생 시절, 사실 그때의 나 또한 스스로를 챙긴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지 라면을 끓이면서 오래 따뜻하게 먹고 싶었던 마음에 라면을 양은냄비가 아니라 뚝배기에 끓인 적이 있다. 물이 끓는 데한참이나 걸리고, 약간 덜 익었을 때 불을 꺼야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대충 끓일 수 없는 뚝배기 라면. 쉽사리 손에 쥐어지는 한 봉지의 라면이어도 약간 다른, 정성이라 할 만한 것이 조 첨가된 것을 그 어린 입속에 넣어주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이제는 그보다 조금 더 귀하게 대접하고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거겠지. 그러려면 자신을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할 테고, 타인에게도 꼭 필요한 때에 그가 원하는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테다.




감사실에서 근무하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과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기에 발령받아 왔지만, 흔하고 간편한 도움을 주는 자리가 아니란 것을 매번 여실히 느낀다. 며칠 전엔 몇 부서원들과 야근을 하면서, 이제 라면은 그만 먹자며 잠시 걸어 나와 다 같이 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다. 좀 더 늦게 퇴근하더라도, 가뜩이나 출장과 야근으로 고생 중인 우리의 몸을 생각해서 제대로 된 걸 챙겨 먹자고 서로를 토닥였다. 우리가 하는 일의 영향력 또한 단시간에 완성되는 그런 손쉬운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다 같이 든든하게 속을 채운 뒤, 뚜벅뚜벅 걸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간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간편한 것들을 먹지 않기로 한다. 말장난 같지만 이제는 'ㅊ과장이-라면'이 아니라, 'ㅊ과장이 아니-라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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