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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Feb 18. 2024

할머니의 드라이기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애틋함

먼 곳으로의 인사이동은 안정적인 거주에 위협이 된다. 다행히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기숙사가 있어서, 수도권에서 어렵게 집을 구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조그만 기숙사 방 하나인데도 한 사람이 생활하는 데에는 최소한이지만 다양한 물건들이 필요했다.


평소 미니멀리스트라 쟁여두기를 싫어하고, 물욕이 크게 없는 편이라 사용하는 물건들도 웬만해선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크게 새로 사지 않는다. 예전에 어디선가 사주를 봤을 때, 나에게 조금 고지식한 면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가던 곳을 계속 가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것보다 쓰던 물건만 고집한다고. 어쩌면 나의 이 고지식함을 '미니멀리스트'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럼 뭐 어때.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됐지.


그래서 이번에 기숙사에 둘 물품을 챙기면서도, 가급적 집에서 쓰던 것들을 그대로 들고 올라가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써야 하는 것들이 본가와 기숙사에 모두 구비돼 있어야 하니 화장품이며 생필품을 하나씩 더 사는 데에 적잖은 돈이 들어갔던 것 같다. 꼭 사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은 당장의 출근을 위해 무엇이든 집에서 쓰던 것이나 미리 쟁여두던 것들로 짐을 꾸렸다. 그렇게 챙겨 온 들 중에 이곳에 온 뒤, 뜻밖에 소중히 여기게 된  다름 아닌 '헤어 드라이기'다.




지난해,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시면서 온기 가득했던 할머니의 집은 주인을 잃고 그 생기를 잃었다. 언제든 누가와도 따뜻한 아랫목을 내줄 수 있도록 전기장판을 따듯하게 켜 두었던 할머니의 방은 이제 냉기로 가득하다. 지금 할머니의 몸 상태로 봐선, 사실상 불편하기 그지없는 작디작은 그 집에 할머니가 돌아오시기는 힘들성 싶다. 그래도 엄마는 할머니께 집 상태도 알려줄 겸, 가끔씩 관리하는 차원으로 할머니 댁을 들른다. 그러다 주인 잃은 물건들 중 우리 집에서 그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렇게 나에게 오게 된 물건 중 하나가 '헤어 드라이기'다. 짐을 꾸리던 무렵, 필요한 물품 중에 헤어 드라이기가 있었는데 엄마는 할머니 댁에 할머니가 쓰시던 드라이기를 보았다며, 가서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가져와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헤어드라이기는 대구를 떠나, 나와 함께 인천으로 왔다. 오래되고 크기도 작은 데다, 작은 만큼 바람도 약한 드라이기엔 할머니의 사용감이 가득하다. 소리도 바람도 약한 드라이기를 처음 여기 와서 사용했을 때에, 머리숱 많은 나에게는 약하디 약한 성능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며칠 지내다 보니, 기숙사 옆방의 소음이 생각보다 잘 들렸고, 어쩌면 드라이기 소리가 작은 것 이곳에선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잘 마르지 않는 머리야 원래 집에서 바람이 강한 드라이기를 썼어도 바로 잘 마르지 않았기에, 조금 번거롭지만 시간 간격을 두고 또 말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나는 이 드라이기를 쓰면서 하루에 한 번씩, 꼭 머나먼 이곳에서 할머니를 생각한다. 대구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첫 출장을 마치고, 명절을 쇠러 대구에 내려오면서 앞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감사'라는 업무의 특성상 어느 곳이든 나의 방문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첫 출장부터 느꼈고, 방문한 곳에 방문 사유와 관계없는 반가운 이가 있어도 웃으며 인사할 수 없었다. 몸이 반응하는 애정을 마음으로 다스리고, 감정이 반응하는 몸의 변화를 통제해야 했다.


집까지 떠나왔는데, 하는 업무마저 이렇다니. 설 연휴를 앞두고 집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연휴 기간 동안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읽고, 가족들과 짧은 여행을 떠나고, 아끼는 사람들과 잠시 조우하기도 하면서 나는 내 생각을 뒤집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이제 내가 아끼는 이들 더욱 애틋해지 그런 일을 하게 된 거라고. 그게 치면,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설 명절이 끝나 다시 인천으로 올라왔고, 퇴근을 해 씻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또 할머니의 드라이기를 손에 쥐었다. 몸도 정신도 온전치 않은 할머니는 얼마 전 내가 인천으로 이사를 잘했는지 물었다고 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가운데에서도 손녀의 이동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 이젠 예쁜 털모자 더 요긴해져 버린, 파마 염색도 없을 정도로 약해진 할머니지만 매일 이곳에서 머리카락을  때마다 드라이기 머니의 가늘고 뽀글한 파마머리를 상상해 본다. 손끝에 보들보들하게 전해졌을 그 촉감을.


낡아도 제 역할을 잘 해내주고 있는 이 녀석을 살살 달래 아끼며 사용할 테니, 그녀의 몸 기억도 나의 애틋한 텔레파시를 받았으면 좋겠다. 목소리가 작아져도 당신의 입으로 말을 내뱉는 법을 잊지 않으셨으면. 주변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아도, 당신의 귀로 응원의 소리를 수집하는 법은 잊지 않으셨으면. 이곳에서 할머니의 드라이기가 내뱉는 엷은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바싹 말리지 못하듯, 그녀의 몸도 기억도 충분히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할머니와 엄마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이곳에 와서, 아끼는 모든 이들이 애틋하게 느껴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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