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5화)

by pyj

그날 이후 설희는 더 이상 사무실을 정리하지 않았다. 복사기에 A4용지를 채우지 않았고, 탕비실의 설거지도, 회의실의 자료도 나서서 준비하지 않았다. 자기 업무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점심시간에도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가끔은 핸드폰을 보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자잘한 번거로움에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무보조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부터 순서를 정해 사무실 정리를 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자기 일이 아니길 바라며 짜증 섞인 불만들을 속으로만 삭일 뿐이었다.


“김주임님. 요즘은 안 바쁘신 것 같아요.”

“김주임님. 오늘은 도시락을 안 가지고 오시나 봐요.”

동료들은 사라진 설희의 바지런함이 돌아오길 바라며 은근히 떠봤지만, 그녀는 꿈쩍이지 않았다.


“씨발, 생긴 건 좇밥인데 성질도 느려터져서. 냄새는 왜 그렇게 나는지 몰라.”

“구역질 나는 차인지 한약인지 먹어서 얼굴이 그 모양인 거 아냐?”

“잘 씻지도 않나 봐. 진짜 정신에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차나 매일 마시지. 그리고 그 텀블러 봤어? 5년 동안 매일 그거만 쓰잖아. 세균이 득실거릴 텐데 비위도 좋아.”


그녀의 바지런함을 기다리던 직원들은 이제 기다림 대신 비난과 불만을 쏟아내었다. 이전의 무심하던 친절조차 사라진 채, 그녀는 어느 날은 이식증 환자였다가 편집증 환자도 되었고, 또 어느 날은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는 조현병 환자도 되어있었다. 사무실의 번거로움은 혐오로 이어졌고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갈수록 노골적이었지만 누구도 그 상황을 말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말 문제는 설희 또한 사람들의 수군거림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그녀의 단내는 점점 심해졌고 얼마나 씻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는 역한 냄새가 풍겼다. 머리는 고무줄로 대충 묶어 넘겼고 통통했던 몸은 점점 더 체중이 불어 가고 있었다. 낡은 신발의 뒤축이 벗겨지고 가방도 한쪽 끈이 떨어져 있었지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검은색 텀블러 속의 정체 모를 차뿐이었다. 여전히 매일 아침 역한 냄새를 풍기는 차를 마셨고 누구와도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직원들은 그녀의 차가 마약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윤하는 설희의 변화가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날, 설희의 텀블러에 손을 댄 것이 이런 파문을 불러올지 상상도 못 했다. 설희의 몸에서는 나는 냄새는 텀블러 속의 차처럼 역겨워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가 정신병자라서 강제 퇴사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부장도 직원들도 모두 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마약 중독 의심에 정신 질환이 징계의 사유였다.


윤하는 징계 관련 소식을 듣고 차 맛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얼핏 한약처럼도 보였지만, 부장의 말처럼 구정물 맛이 났다. 토사물 같은 차를 김주임님은 왜 그렇게 애지중지했을까? 설희가 윤하를 복도로 불러내던 날 설희 입에서 풍기던 단내는 얼마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야 날 수 있는 냄새일까? 그녀가 정말 마약에 중독된 걸까?


윤하는 허전한 마음에 직원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몰래 설희의 책상 앞에 앉아 보기도 했다. 가지런한 문구류는 만화 캐릭터 같은 귀여운 것들이 많았고 책상 위 메모에는 해야 할 일과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글씨도 작고 귀여워 문구류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서랍에는 사탕이랑 초콜릿 같은 간식들이 몇 개씩 보였지만 그저 평범했다.

이런 평범한 취향의 설희가 집착하는 그 차는 도대체 뭘까? 궁금증은 설희가 징계라는 위원회의 결정으로 퇴사가 결정되던 날에도, 그녀가 회사를 떠나도 윤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설희의 책상이 비워지고 또 다른 직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그녀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어도 윤하는 차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냄새는 도대체 뭐였을까?


사실 윤하에게 설희는 길거리에서 수십 번은 지나쳤을 얼굴 중의 하나였다. 외모가 수려한 것도,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잡일을 처리하느라 점심시간조차 분주했다. 그렇다고 딱히 진급에도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관종도, 그렇다고 봉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마구잡이로 자라 있는 잡초군락 마냥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설희에게 갑자기 눈길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거친 손등을 비집고 나온 흉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윤하가 마시던 커피잔을 정리하러 탕비실에 들어갔을 때 설희는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잔을 건네받았다. 그날 윤하의 눈에 손등 위로 자로 그은 듯 10센티 남짓 반듯한 문신처럼 자리 잡은 설희의 흉터가 처음 눈에 들어왔다.


“손에 흉터가 있네요.?” 사적으로 설희에게 건넨 첫 대화였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자기 손을 무심히 바라봤다.

“무슨 흉터예요? 이렇게 반듯한 상처는 처음 봐요.”

“별거 아니에요. 어릴 때 다친 거예요.” 설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설희는 변함이 없었지만 윤하는 그녀의 자잘한 움직임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지, 일과 후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왜 낡은 신발을 구겨 신고 다니는지, 소소한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날 설희의 차에 손을 댄 것도 그럼 궁금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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