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는 회사를 그만두고 칩거를 시작했다. 하루를 그리고 수일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김치를 버무린 즉석밥을 먹고, 그리고... 차를 마셨다. 밖에 나가지도, 씻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퇴사의 사유가 정신 질환이나 마약이라 하였지만 사실 그녀는 간이 검사나 정신과 상담조차 받지 않았다. 시작은 윤하였지만 정작 떠난 버린 것은 설희가 되어버렸다.
설희의 눈에 비친 윤하는 눈길을 끄는 외모와 단정한 말투를 가진 도드라지게 예쁜 아가씨였다. 긴장을 하거나 당황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 당참이 있었다. 설희에게는 그녀의 자신 있는 행동이 부럽기도 기이하기도 했다. 일처리가 느리고 실수가 잦아도 사람들은 그녀를 다그치지 않았다. 매일이 부산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자신과 다르게 윤하에게는 그 어떤 절박함도 없었다.
그런 윤하를 보며 설희는 자신의 강박을 생각한 적이 있다. 시작이 언제였더라? 아끼든 책을 창밖으로 던져버리던 짝 때문이었나? 아니면 훈육인지 분풀이인지 알 수 없던 선생님의 매질이었나? 그도 아니면 다정한 말투로 가슴을 흔들던 따뜻했던 친구의 배신이었나?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떨고, 같은 단어를 수십 번 써 내려가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던 강박적인 생각들. 그녀는 자신이 압축하던 폐지에 깔려 죽은 '한탸'가 된 기분이었다. 참기 힘든 시간이 주는 갑갑함.
사실 설희는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담당 의사는 배려인지 귀찮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것저것 묻지조차 않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형식적인 질문도 건조하고 단조로웠다. 하지만 설희는 그것이 좋았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바지런함은 배려로 비쳤고, 누구도 그녀를 귀찮게 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그야말로 설희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물론, 윤하가 자신의 차를 건드리기 전까지였다.
윤하는 탕비실에서 설거지를 하는 설희에게 먹던 컵을 내밀 정도로 선배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손에 흉터가 있네요?” 그날, 윤하의 물음은 건조하지만 다정했다.
“별거 아니에요. 어릴 때 다친 거예요.” 설희는 옷소매로 흉터를 가렸다.
그때부터인가? 이상하게도 설희의 눈도 윤하를 좇기 시작했다. 날씬한 몸에 어울리는 원피스도, 가녀린 팔에서 반짝이는 장신구도, 립스틱도, 자연스러운 마스카라에서도 빛이 났다. 설희는 특히 윤하의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에게는 체취가 있다. 입 냄새, 살냄새, 땀 냄새…. 수많은 냄새가 어울려 삶을 만든다. 설희의 자칭 어진향차도 처음에는 담백한 차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지금의 설희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냄새만 남겼다. 오래된 인간의 냄새. 아포크린샘, 페로몬, 세균, 질병, 나이…. 갖가지 이유에서 오는 절망처럼 지독한 냄새.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설희의 집착….
설희는 도시의 하늘이 흐리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먼지와 공해뿐인 뿌연 하늘이 토할 듯 역겹지만 희한하게 그녀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도시는 사람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삶은 더 우울하고 불안하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해서, 노력의 끝이 초라해서…. 그럴수록 도시는 초라한 이면을 감추려 더욱 빛을 낸다. 설희는 그런 도시를 떠나고 싶었지만, 탈출은 우라노스(Uranus)에게 버려지는 것만큼 두렵고, 파에톤의 수레처럼 공포스러웠다. 도시의 복잡함과 지저분함, 편리함과 건조함, 쌀쌀함과 고독에 중독되어 다른 삶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숨 막히도록 조여대는 도시의 차가움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도시에 중독되어 홀로 갇혀 있었다.
차에 대한 설희의 집착은 시간과 더불어 오염되고 빛을 잃었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이유라는 것은 낡은 것에 대한 집착과 스스로에 대한 경멸뿐, 그녀에게서 의미를 잃은 지도 오래다. 설희의 감정은 중국의 신농(神農) 황제처럼 차 맛에 대한 경외감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집착이자 경박한 자기혐오였다. 그리고 그것은 설희가 살아남은 마지막 이유이자 선택이다. 그래서 그날, 윤하의 손에 들려진 텀블러는 설희의 인간에 대한 마지막 연결을 잘라버린 것만큼 두렵고 공포스러웠다.
“왜 내 텀블러를 만졌어요.?”설희의 질문에 윤하는 그저 “그냥 호기심에…. 죄송해요.”라고 대답했다. 호기심….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윤하의 대답이 설희에게는 무척 낯설었다. 분명 화를 내려했는데 윤하의 호기심이라는 대답에 무슨 말로 화를 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5년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야 호기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도 설희에게 건조한 목소리로 자주 얘기했었다.
“약은 몸에 나쁘지 않아요. 그냥 처방된 대로 필요하면 드세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해보세요. 그러면 기분이 나아질 것에요.”
의사가 얘기하던 새로운 것. 그것은 호기심과 같은 말일까? 새롭다는 것은 전에 없던 다른 것이다. 더러워진 텀블러 속의 세균 때문인지, 매일 끓여대는 차탕기 때문인지 설희의 차 맛은 실제로 매일 조금씩은 다르다. 그러면 이것도 새로운 것일까?
그날부터 설희의 새로운 집착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회사의 잡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매일 처리하는 단조로운 업무가 끝이 나면 쉬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았다. 그 집착은 윤하에 대한 집착 어린 시선으로 이어졌다. 윤하처럼 화장하고 옷을 입고, 윤하처럼 웃고 싶었다. 설희는 윤하와 고마리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마리는 양지바른 곳에서 보기 좋게 피어나 서로의 가시를 비비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사람에게는 음식과 약을, 짐승에게는 먹이를 내어주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물을 맑게 하는 능력치도 있고 분홍빛 자태도 아름다워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반가운 존재이다. 워낙 무성히 자라 고사체를 퇴비로도 사용할 수 있어 실용성도 있다. 그러니 시골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에는 늘 고마리 군락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고마리도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다. 도시의 사람들은 고마리를 먹지 않고 마구잡이 피어나는 모양새도 도시와 어울리지 않아 무리 지어 살아갈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홍수에 휩쓸려도 금세 도랑 가득 군락을 만들어 내는 생명력도 도시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도시의 고마리는 잡초처럼 초라하고 외롭다. 설희도 더 이상 무리를 지을 수 없는 고마리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존재였다. 피멍 같은 우울함이 설희를 덮치고 새로움에 대한 집착이 그녀를 죽여가도, 그저 윤하와 군락이 되어 살아가고 싶었다. 설희의 악취가 윤하의 향기와 중화되어 하나의 군락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