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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18. 2023

불안증

 언제부터인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주던 선생님의 얼굴이다. 나는 화가 많은 학생이었고 지각을 밥먹듯이 했다. 선생님은 훈육이 되지 않던 나를 몰아세우고 야단을 쳤지만 나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지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욕을 듣고, 밀대로 맞고, 출석부로 머리를 찍히면서 죄송하다고 말을 수십 번 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언컨대 반항은 아니었다. 그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반항적인 아이가 아니었지만 행동은 늘 튀었고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조차도 지나치게 긴장하고 과하게 행동하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시절 내 불안증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병으로 커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비판적이고 거칠었지만 옷가게에서 직원에게 말을 거는 것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어려웠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손이 떨리고 눈을 맞추기도 힘들었고, 그런 자신을 감추려 행동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렇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나도 피해자가 아닐까? 웃음도 난다.


 처음 병원을 방문한 날,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가장 힘든 것이 뭐냐고? 사실 나는 힘들지 않았다. 단지 직장을 다닐 정도의 용기가 없을 뿐이었다. 의사는 사회공포증은 심각한 병이 아니라면서도 항불안제를 처방했다. 이 약이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줄 거라는 말과 함께. 이 조막만 한 약은 참으로 따뜻했다. 졸리면서도 차분해지는 그런 감정은 극도로 긴장된 손을 잡아주던 할머니의 손과 같았다. 그렇게 이 녀석과 친구가 된 지도 20년이 넘었고 이제 항우울제라는 친구와 같이 나를 이 세상에 붙잡아주고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불안은 자신을 부정하는 가장 불쾌한 감정이라고. 그리고 편협한 경험으로 자신을 정의 내리는 나쁜 관념이라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거울 속의 내가 싫지 않다. 단지 사람들 속의 내가 역겨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남이 생각하는 자신이 다를 때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끝도 없는 눈치게임 같은 인생이 지겹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학교를 졸업했고 취직도 했다. 내가 살고 싶은 모습도 아니고, 여전히 거친 나에게는 절친이라고 불릴 친구도 없지만 견디고 버티며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다. 이제 식당에서 주문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볼 용기도 있다. 직장 후배에게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여전히 두렵지만 사람들 속에 있고, 맛있는 커피를 찾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강아지와 산책도 한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하루를 보내며 오늘과 똑같을 내일을 기다린다. 약 때문인지 자주 졸리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도 나는 항상 여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쾨니히스베르크에 갇힌 칸트처럼 매일을 똑같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무런 철학이 없다. 그래도 문득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듯 사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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