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운명의 자동차 6,500대
링링과 함께했던 눈 덮인 채석강의 추억, 그리고 변산반도의 수평선 너머로 지던 석양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 바다는 이전과 달랐다. 내가 승선한 배는 당시 현대중공업의 야심작이자, 바다 위의 거대한 주차 빌딩이라 불리던 자동차 운반선(PCC, Pure Car Carrier) ‘울산 1호’였다.
울산항 현대자동차 전용 부두에 우뚝 솟은 울산 1호는 마치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기괴하고도 압도적인 형상이었다. 투박한 원목선과는 차원이 다른, 매끈하면서도 거대한 위용이 나를 맞이했다.
자동차 운반선의 가치와 톤수 계산법은 일반 선박과 다르다. 컨테이너선이 TEU로 말한다면, PCC는 CBU(Completely Built-Up, 완성차) 대수로 그 위용을 증명한다. 울산 1호는 6,500대의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13층 높이의 거대 선박이었다.
자동차는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드라이버들이 직접 운전해 배 안으로 진입하는 로로(Ro-Ro, Roll-on/Roll-off) 방식으로 선적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베테랑 스테베도어(Stevedore, 항만 하역 노동자)들은 차간 간격을 불과 10~20cm로 유지하며 빈틈없이 차를 채워 넣는다. 축구장 10개 면적에 가득 찼던 6,500대의 차량이 단 하루 만에 선박 안으로 사라지는 광경은 가히 예술에 가까운 기술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선박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선체가 높고 옆면적이 넓어 바람의 영향을 극도로 많이 받는데, 이를 전문 용어로 '풍압 면적(Windage Area)'이 크다고 한다. 황천 항해 시 거대한 선체는 마치 돛처럼 바람을 안고 기우뚱거렸고, 그럴 때마다 1등 항해사와 갑판원들은 비상에 걸렸다.
수천 대의 자동차가 단 10cm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래싱(Lashing)'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휘발성 연료와 배터리를 품은 수천 대의 차 중 단 한 대라도 고정이 풀려 구르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선박 전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긴장감을 떠올리면, 훗날 일어난 대형 선박 사고들이 '래싱'과 '평형수(Ballast Water)' 관리의 부실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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