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변산해수욕장

[변산 연가] UFO가 떠 있는 바다, 코쟁이 맥주에 취하던 그 시절

by 최경열

1933년생 '원조 맛집' 해수욕장을 아시나요?

사람들은 흔히 해수욕장 하면 부산이나 강릉을 떠올리지만, 진짜 '클래스'는 변산에서 시작됩니다. 1933년 개장, 서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형님급 해수욕장이 바로 우리 고향 대항리에 있죠.

하얀 백사장 위에 그림처럼 서 있던 일본식 정자 관수정, 그리고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불리던 울창한 해송 숲.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았습니다. 수심이 워낙 완만해 꼬마들이 놀기에 이보다 좋을 순 없었죠. 그 얕은 바다에서 개헤엄부터 시작해 '변산 물개'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제 유년의 8할은 그 푸른 물결 속에 있었습니다. 변산해수욕장에서 보는 일몰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image.png

변산 지붕 위의 '거대 버섯'과 UFO

변산 어디서나 고개를 들면 보이는 가장 높은 곳, 의상봉(508m). 그 정상에는 정체불명의 하얀 버섯 세 개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엔 "진짜 UFO가 구름 위에 떠 있는 건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죠.

사실 그것은 북한 비행기까지 감시하던 미군 공군의 대형 레이더였습니다. 지도에도 안 나오는 비밀 구역이라 산신령 정도나 가야 발을 붙일 수 있었죠. 대신 우리는 남여치에서 출발해 쌍선봉을 지나며 그 신비로운 풍경을 눈에 담곤 했습니다. 직소폭포 선녀탕에서 발을 씻고 내소사로 넘어가는 그 길은 지금 봐도 한국 8경 다운 절경 중의 절경입니다.

image.png 필자가 직접 찍은 의상봉

남생이 웅덩이와 '검은 물'의 유혹

국민학교 6학년 여름, 영화에서나 보던 '코쟁이' 미군들이 해수욕장에 나타났습니다. 호기심 많은 '변산 촌놈'들에게 그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원숭이 같았죠. 미군들은 1 급수 남생이가 살던 시냇가 명당에 텐트를 쳤고, 거기엔 마법 같은 보물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소꿉친구 상식이와 저는 풀숲을 헤치며 잠입 작전을 펼쳤습니다. 바위 동굴로 훔쳐 온 보물들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죠.

Gemini_Generated_Image_xcy6o8xcy6o8xcy6.png

갈색 깡통: 한 캔 비우니 정신이 몽롱해지며 하늘을 날 것 같더군요. (나중에 알았죠, 그게 '맥주'였다는 걸요!)

빨간 깡통: 사카린 물만 먹던 혀에 폭탄이 터지는 청량함! 그게 바로 전설의 '콜라'였습니다. 머리털나고 처음 먹어봤던 음료였습니다.

길쭉한 물건: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쪽쪽 빨았는데, 입안에서 고기 맛이 나며 녹아내리던 환상의 소시지까지!

동굴 속에서 기분 좋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왠지 미군들처럼 키가 쑥쑥 커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6ijkfb6ijkfb6ijk.png

"돈 드링크! 게라리어!" - 그 시절의 엉터리 영어

욕심이 과했는지 다음 날은 결국 들키고 말았습니다. 꾀죄죄한 시골 소년들이 불쌍했는지, 거구의 미군 형님이 캔 하나를 툭 던져주며 외쳤죠.

"Don't drink! Get out of here!" (돈 드링 께라리어 마시지 마! 여기서 나가!) 돈 내고 마시라는 건지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었었죠.

그게 욕인 줄도 모르고 동네 영어 좀 한다는 고등학생 형님들, 중학교 선생님께 물어봐도 "그런 문장은 없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원어민 발음을 평생 들어본 적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말이 "술 마시지 말고 저리 꺼저" 뜻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 후로도 수년이 더 걸렸습니다.


� 여행자들을 위한 변산 Tip

지금 변산해수욕장에 가신다면, 백사장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보세요. 그리고 의상봉 쪽을 바라보며 상상해 보세요. 50년 전, 이곳 어딘가 동굴 속에서 처음 맛본 맥주에 취해 "나도 미국 사람처럼 키 커지겠지?"라고 꿈꾸던 소년들의 웃음소리를 말이죠.

역사와 낭만, 그리고 '첫 경험'의 맛이 살아있는 변산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5화제5화 불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