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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14. 2023

2화 추억의 닭서리

완전범죄

우리 고향 변산반도는 유난히 다른 지역에 비하여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다.

산과 바다가 잘 어울린 지역 특성인가 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닭서리 추억인데 지금은 불법이면서 없어진 문화라 깜빵 간다..


때는 지금부터 45년 전 열아홉 (무서운 게 없던 조폭 같은) 시절, 학교 갔다 돌아오는 하굣길에 작당을 한다. 구체적인 행동 모의는 이렇다.

장소는 기곤이 공부 방, 안채와 좀 떨어진 사방이 대나무로 둘러 쌓여있는 외양간 딸린 황토 흙집이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쳐도 대나무가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사랑채였다.

커다란 검은 솥에 여물이 끓고 있어 흙집 온돌방은 항상 뜨근했다.

방구석에 소여물에 섞어줄 늙은 호박 몇 개가 쌓여있었고 윗목에는 겨울철 간식 아닌 주식인 고구마가 수숫대 칸막이를 채우고 있었다.

외양간에는 새끼 밴 암소 한 마리가 빵빵한 뱃속의 여물을 꺼내어 아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닭서리 음모를 쥐도 새도 모르게 맞혀 둔 상태였고 행동 개시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많았다. 무릎까지 쌓인 날엔 산토끼와 꿩을 잡으러 산에 올랐다.

산토끼를 잡으려면 최소한 눈이 무릎까지 쌓여야 토끼가 뛰지 못하고 꿩도 날지를 못한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여지없이 꿩과 산토끼가 나타난다.


특히 꿩은 양다리를 이용해 땅에서 비행기가 도움닫기 하듯 어느 정도 빠르게 움직여야 이륙하고 착륙하는데 양다리가 눈에 파묻히면 그 자리에서 날개만 퍼덕거리다 이륙에 실패한다.

거기에 꿩은 정말 멍청한 새다. 대가리만 숨기면 몸 전체를 숨기는 줄 알고 그렇게 눈 속에 처박혀 있다. 지금은 멧돼지가 많아 농작물 피해를 주고 있지만, 그때는 멧돼지는 없고 산토끼가 많았다. 근데 지금은 왜 산토끼가 멸종되다시피 보이지 않는 것인지 부안지역 생태를 연구해 볼 문제다. 그렇게 눈 오는 날은 그동안 부족했던 단백질과 지방을 야생 꿩과 산토끼를 잡아서 보충했다. 또 산토끼 가죽은 귀마개로 요긴하게 사용했다.


눈이 적게 와서 산토끼도 꿩도 못 잡으면 우리는 계획했던 닭서리 음모를 실행한다.

행동하려면 철저하게 미리 계획을 짜고 서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먼저 닭을 키우는 동네를 방문하여 사전 답사를 하고 집 구조와 닭장을 점검하고 돌아와 작당한 다음 각자 자기 역할을 맡고 움직여야 한다. 닭서리 하는 데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동네를 선정할 때는 우리 동네 대항리에서 반경 5km, 즉, 십 리를 벗어나고 최소한 산을 두 재는 넘어야 한다. 가까운 동네는 일가친척인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또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성립이 안 돼 들킬 확률이 높다.


개가 많이 사는 동네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가난한 집도 피해야 한다. 말하자면 될 수 있는 한 마을과 떨어진 외딴집이고 개를 키우지 않는 곳이 안성맞춤이다. 시간은 보름달이 뜨지 않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깜깜한 밤이면 더욱 좋은 날씨이다. 보름달이 뜨고 날씨가 좋으면 마시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쉽게 눈에 띄어서 이 역시 들킬 확률이 높다.


큰 길가는 피하고 큰 동네인 지서리, 지동리, 운산리도 피해야 한다. 그러면 대항리에서 5km 떨어지고 좀 외진 동네로 지남리, 고사포, 노리목, 가난골, 사망암, 띠빠똥, 묵정리 정도가 사정권 안으로 들어온다. 고사포 희성이 집이나 상교가 사는 노리목은 좋은 환경이지만 대항리에서는 너무 멀어 제외한다.


현장답사가 끝나면 밤중에 삶아 먹기 위해서 미리 소금과 마늘을 준비한다. 외양간 한 곳에 숨겨놓아야 하고 막걸리 한 말도 미리 지서리 양조장에 가서 받아 볏짚 속에 숨겨놔야 한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행동대원은 나와 원호, 병화, 기곤이 그리고 저세상으로 먼저 간 상식이 5명이다. 해가 기운 지 한참이 되어 시간을 보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집을 떠나 산을 큰골, 작은 골 두 재를 넘어 목적지에 도달했다.


큰길은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어 산길을 택했다. 그 길은 살인사건이 나고 인공 때 사람이 많이 죽어 귀신이 나온다는 으스스한 길이었다. 한마디로 밤이 되면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우리에게는 안전한 길이였다. 마웅개 큰골과 작은골을 거처 목적지까지 도달했다.

장소는 띠빠동에서 외진 곳 옹고골의 어느 초가집이었다. 그 집이 영배 집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집 주위를 돌아보니 부잣집은 아니지만, 메주며 겨우내 먹을거리가 처마 밑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것을 보니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전형적인 농촌집이었다.


마루 밑에는 똥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개는 영배가 키워서 된장 발라 잡아먹으라는 영리한 똥개였다. 음식물 찌꺼기며 어린아기 똥도 다 먹어 치우는 개였다. 음식물 분리수거를 돕는 착한 도우미였다. 10리 전방에서도 주인을 알고 달려오는 그런 영리한 개였다.


그러나 똥개는 겁을 내지 않아도 된다. 낮에 원호가 개장사 잠바를 입고 있으면 냄새를 맡고 무서워서 개가 짖지 않고 꼬랑지를 내리고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고 했다. 준비성이 있는 원호는 벌써 개장사 잠바를 빌려다 놓았다. 그래서 원호 임무는 개장사 잠바를 입고 똥개를 겁줘 진압해 못 짖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었다. 벌써 컹컹거리는 개 짖는 소리가 마을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멀리 개 짖는 소리는 나지만, 마을은 불이 거의 꺼져있어 적막이 맴돌고 있었다.

낮은 포복 자세로 낮에 답사했던 닭장으로 접근을 했다. 닭 잡는 데는 병화가 선수다.

뜨뜻한 손을 닭장에 살그머니 넣어 날개죽지를 잡아 급소를 꽉 죄면 꼼짝 못 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게 순조롭게 될 리가 없다. 손을 닭장에 넣는 순간 수탉이 잡히지 않으려고 ‘꼬꼬댁’ 거리며 몸부림을 치더니 닭장을 튀기 시작했다. 병화는 당장 손을 빼서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주인이라도 나오면 모든 게 끝장이다. 꼬꼬댁 소리를 들었던지 마루 밑에 있는 똥개가 기어 나와 짖기 시작했다. 원호는 ‘때는 이때다’하고 개장사 잠바를 입고 똥개 앞에 섰다. 들리던 말이 사실이었다. 똥개는 벌써 개장사로 착각하고 마루 밑으로 들어가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우리는 탱자나무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잠깐 사태를 주시했다. 주인 양반(영배 부친)은 무슨 영문인가 하고 밖을 한 바퀴 돌다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신다.

몸을 숨기고 시간이 흘러 주위의 적막이 감돌 때 어디선가 시꺼먼 물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왔을 때 확인해 보니 마대 푸대를 짊어진 병화였다.

닭 서리하면 노하우가 많은 병화는 실패가 거의 없다. 개가 짖고 주인 양반이 나와 봤는데도 순간을 놓이지 않은 것이다. 포대에는 막 잡아 온 뜨뜻한 닭이 3마리나 있었다.

이 정도면 5명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대성공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던 두 개의 산 고개도 가볍게 넘어간다. 외양간 움막에 도착해 보니 벌써 여물을 퍼준 검은 가마솥에 상식이가 물을 펄펄 끓이고 있었다.


3마리 닭을 털을 벗겨보니 얼마나 세게 움켜쥐었던지 핏자국이 그대로다. 털과 배를 잘라 빼낸 창사는 한 점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장작불 속에 던져버렸다.

가마솥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기름진 토종닭이 익고 있다. 마늘과 함께 푹 삶은 토종닭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푹 익은 닭을 꺼내어 막걸리에 날이 새도록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먹고 난 뼈도 장작불 속에 넣어 태워버리고 기름기가 묻어있는 솥이며 그릇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놓고 흔적을 없애버렸다. 쥐도 새도 모르는 닭서리지만, 뻔히 눈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외양간에 있는 새끼 밴 암소였다.


솥에 기름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초식동물인 소는 아무리 좋은 재료로 여물을 쒀 줘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솥에 묻어있는 기름기를 용케 알아차린다. 소가 갑자기 여물을 먹지 않으면 기곤이 어버님은 벌써 우리를 의심한다.


기곤이 아버님은 우리가 닭서리 한 것을 모를 리 없지만 우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지 않도록 약속을 했기 때문에 형사가 와서 다그쳐도 소용이 없다.


닭 잡아먹고 철저히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쉬운 일이고 그렇게 닭서리는 성공했다. 후에 안 노하우지만 소가 닭기름 냄새 맡고 여물을 먹지 않으면 쌀겨를 약간의 깨소금과 버무려 소의 콧구멍에 쑤셔 박으면 냄새를 못 맡아 여물을 잘 먹는다 했다. 우리는 완전 범행을 했다고 자부했다. 그 후로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갑자기 새벽부터 울 아버지가 텅 빈 닭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닭 두 마리와 토끼 한 마리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우리 집 또한 외딴집이라 닭서리로 지목하기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동네 사람이 한 짓은 아니며 그렇다고 가까운 마웅 개나 합구 사람이 한 짓도 아니며 반경 5km 이상 떨어진 지남리나 띠빠똥 사람들이 한 짓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완전 범죄자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나? 인과응보, 사필귀정, 자업자득, 그렇게 한숨만 쉬고 포기를 해야만 했다.


근데 우리 집 닭 잡아먹은 범인이 영배 너 아녀?


지금이라도 자수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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