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경열 Dec 27. 2023

9화 기생충

채변검사

21세기 최첨단 과학과 의학세계에서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머지않았다. 병도 아닌 바이러스가 퍼지는 감기 비슷한 하찮은 코로나로 인하여 세계가 호들갑을 떨었고 대한민국 문화가 바뀌었다. 
60~70년대 우리 어릴 적에도 코로나와 비슷한 전염병이 돌았다. 이름도 비슷하다. ‘코로나’ 아닌, ‘콜레라’다. 이 전염병은 오염된 물과 채소 그리고 주위에 감염된 어패류에서 옮기는 병이다. 대부분 시골에서는 수돗물이 아닌 우물물을 마셨다. 

  전염병이 돌면 제일 먼저 우물물을 소독해야 한다고 정부에서 우물소독약을 배급하여 의무적으로 공동 우물물에 쏟아부었다. 소독약 성분이 염소인지 염산인지도 모른다. 희석시켜야 할 양도 비율도 모른다. 제일 중요한 인체에 영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콜레라 전염병을 퇴치한다고 정부의 지원 시책이니 고맙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수영장에 뿌리는 이끼 제거용이나 미생물 제거하는 약품인 것 같았다. 

채소는 농약 없이 거름만 주어 키웠다. 거름에는 화학비료가 아닌 가축똥이나 사람똥을 섞어 발효시킨 유기질 퇴비이다. 인분을 준 배추나 무도 기생충 투성이었다.

 콜레라는 손발을 깨끗이 씻고, 생것이나 날것을 먹지 않고 물은 끓여 먹으면 전염되지 않는 간단한 전염병이다.

가난했던 국민학교 시절은 비 위생적인 음식으로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이 뱃속에 한 주먹씩 들어 있었다. 먹는 음식도 부실했지만 그것마저 기생충과 나누어 먹는 바람에 얼굴은  혈기가 없고 노랗게 떠 있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뱃속에 있는 기생충이 먹을 것이 없으면 밖으로 빠져나올 때도 있다. 회충약을 먹지 않았어도 하얀 굵은 국수 비슷한 것이 항문을 통하여 기어 나온다. 

  정부에서도 방관만 할 수 없기에 전국적으로 기생충 소탕 범국민 운동을 시행하였다.  1년에 두 번 보건소에서 채변 검사를 하여 기생충 약을 무료로 보급해 줬다. 그러 인하여 기생충은 많이 없어졌으나 채변 검사는 귀찮은 일이었다. 냄새 풍기는 푸세식 똥통에서 성냥개비로 비닐봉지에 퍼 담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등굣길을 멀기만 하다. 장난기 있는 어린애들이 책 보자 속에서 터지기라도 한다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숙제처럼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제출하여야 한다. 변비가 있는 나는 제때에 똥이 나오지 않아 우리 집 강아지 똥을 넣어 간 적이 있다. 결과는 정확하였다. 사람에게 나오지 않는 기생충이 나왔다고 큰 병원에 가서 특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겁이 덜컹 났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개똥을 넣었다고 자수했다. 그날도 선생님에게 불이 나도록 손바닥을 맞았다.


당시에는 얼굴엔 버짐, 머리에는 도장밥, 몸에는 부스럼 등 피부병이 많았다. 울 아버지 의사도 아니면서 “바이 따 민 씨 갤핍인 갑다”면서 시금치 한 다발 밭에서 뜯어다가 무쳐 먹고, 삶아 먹고, 국 끓여 먹고, 먹기 싫을 때까지 먹인다. 그러고 나서 창포 베어다 푹 삶은 물에 목욕하고 바위틈에 나오는 광천수를 정종병에 받아서 배 터지게 먹이신다. 그러면 피부병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피부병중 제일 고약한 병이 있었었다. 도장밥이다. 머리에 인감도장처럼 짙게 찍힌 도장밥은 여간해서 치료가 안된다. 도장밥은 이발할 때 사용하는 녹슨 이발기에서 옮겼다고 기계독이라고 불렀다. 걸렸다 하면 초등졸업 때까지 머리에 훈장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고질 피부 질환이다. 약도 없다. 도장밥 같은 고질병에 전문의사 한분이 계셨다. 

동네 돌팔이 의사이다. 6.25 때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아픈 사람들을 치료했던 경험 많은 할아버지였다. 의사 면허는 없었던 같은데 침도 놓고 간단한 수술도 하신다. 가축들 불알도 까신다(정관수술). 이빨도 빼시고 금니도 멋있게 하신다. 그야말로 피부과, 내과, 외과, 치과, 한의과, 수의과를 복수 전공하신 종합병원 원장님이시다. 돈이 없어 큰 병원에 못 가는 우리에게 딱 맞는 의사 선생님이시다. 초가삼간에 살면서 문 높은 종합병원에 가서 치료는커녕 병명도 모르면서 살림 거덜 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거기에 비하면 안성맞춤이다. 웬만한 병은 의사보다 더 잘 치료를 하신다. 연구와 임상실험을 거쳐 신약도 개발하셨다. 도장밥 특효약 민간요법을 개발하셨다. 사람의 유골과 살모사 뼈를 갈아서 쑥과 된장에 버물려 약을 제조하였다. 당시는 6.25 때 전사한 이름 없는 무덤이나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제였다. 효과를 봤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사진캡처 : naver 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8화 간첩신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