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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Sep 18. 2024

변산의 60년생 쥐띠들(1)

변산국민학교 반경 2km 내, 70년대의 모습

나는 60년생 쥐띠이며 변산국민학교 36회 졸업생이다. 70년대 쥐들의 세상 그때 그 시절로 가본다. 학교가 있는 소제지는 지서리이다. 지서리 옛 이름은 지포 혹은 지지포이며 고려시대 학자 김구선생님이 지명을 지었다고 한다. 아주 옛날에는 지서리는 배가 들어올 수 있는 포구라고 하는데 흔적은 없다. 지서리에서 변산해수욕장까지 펼쳐진 유일한 변산평야는 송포와 해수욕장이 막아준 간척지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지서리에서 동쪽은 지동리, 남쪽은 지남리다. 지남리와 중산리 중간에 사자대가리라고 부르는 야산 있다. 사자 대가리 왼쪽은 세미꼬랑이고 고랑을 따라 산등성을 넘으면 운산리이다. 운산리에서 더 올라가면 월명암 길이 보이고 내려가면 중산리, 더 내려가면 지서리 윗 똥이 나온다. 사자 대가리에 올라가면 변산국민학교뿐만 아니라 바다가 보이고 변산해수욕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정월대보름날 당산재도 지내는 곳이다. 상여가 지나갈 때 상주는 절을 3번 해야 한다. 변산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현재 지서리 모습(사자대가리와 변산해수욕장 앞바다)

국민학교는 일제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교실이 6개가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천정은 구멍이 뚫려 비가 샌다. 피난민들이 사용했던 아부라(아스팔트)를 입힌 종이를 지붕에 몇 겹으로 덮은 뒤 비는 새지 않았다. 교실 바닥도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바닥 공간에는 굴러 다니는 구슬, 동전, 학용품이 많이 빠졌다. 보물 창고였다.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개구멍이 교실 밑에 하나씩 뚫려있다. 겨우 들어가면 지하실처럼 쾌쾌한 냄새와 어둡고 귀신이 나올 것 같다. 구멍을 못 찾으면 들어갔다 못 나올 수도 있는 무서운 곳이었다. 우리 쥐띠들은 쥐새끼처럼 그 구멍으로 쑥쑥 잘만 들어갔다. 연필, 지우게 , 칼 등 한주먹을 들고 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쓰던 녹슨 동전도 나온다. 오래된 판자에 옹이 빠진 둥그런 구멍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여자애들과 선생님 팬티도 볼 수 있었다. 온통 빨간 팬티만 입고 다녔다. 그때 그 시절 유행한 팬티였다. 운산리 봉자는 찢어진 팬티도 입고 다녔다. 교실 바닥은 양초를 바르고 걸레로 문지르고 조약돌로 광을 내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한 학년에 2~3반으로 구성이 되어 교실이 부족하였다. 2부제 수업도 부족하였다. 책상도 부족하여 바닥에 앉아 수업을 받았다. 한때는 변산해수욕장 언덕 위에 임해학교분교까지 걸어가 수업을 받아야 했다. 5학년쯤 부로꾸(벽돌)와 공구리(콘크리트)로 신축건물을 단단히 지으면서 임해학교까지 갈 일은 없어졌다. 변산국민학교 분교로는 묵정국민학교 중계국민학교가 있었지만 산골 깊은 곳에 있어 어디에 있는 줄 도 몰랐다. 지금은 중계국민학교는 부안댐에 수몰되었고 묵정국민학교는 폐교되었다. 

변산국민학교 36회 졸업앨범

  변산국민학교에는 박 소사가 계셨다. 학교 건물을 관리하시고 부러진 책상과 의자를 수리하시는 분이었다. 운동장 구석에 1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썩어 넘어졌다. 박 소사님이 나무를 베어내면서 속에서 잠자고 있는 구렁이를 죽였다고 한다. 학교를 지키고 곧 용이 될 이 무기였다고 한다. 구렁이의 저주로 운동회나 소풍 때만 비가 온다고 했다. 마포나 격포국민학교는 한 번도 비와 겹친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화가 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만만한 박 소사한 테 책임을 전가하는 일화였다. 능구렁이를 본사람도 없고, 사실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학교 뒤뜰에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밑을 구다보면 하얀 구더기들이 득실거렸다. 일부 많은 구더기들은 벽을 타고 올라왔다. 참새들의 먹이였다. 화장실 뒤쪽, 학교 북쪽은 측백나무 와 탱자나무로 이루어졌다. 측백나무 사이를 두고 개구멍이 뚫어져있었다. 개가 뚫은 게 아니고 60년생 쥐새끼들이 뚫어 노았다. 산내(변산면은 1987년 개칭) 면사무소 쓰레기 통을 뒤지기 위해서다. 쓰레기를 뒤지면 신문쪼가리, 찢어진 우산, 깡통, 보루바꾸, 볼펜등 재활용해서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어린애들은 재활용에 도사들이었다. 딱지와 종이배를 만들었고 폐품으로 총을 만들었다. 총알은 측백나무 열매를 사용했다. 파란 유리구슬만 한 것이 오돌 토돌 흉측하게 생겼다. 맞아도 그렇게 아프지는 않지만 맞으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적중률은 대한민국 여자양궁 수준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장난감 총하고 비교가 되지 않았다. 총알을 철사 끝에 장전하여 정조준하여  발사한다. 타깃은 만만한 여자애들 뒤통수나 안 이쁜 여자애 귀때기다. 정확히 맞추면 지랄발광하면서 달려든다. 제수가 나빠 덩치가 큰 여자애들한테 잡히면 디지게 맞고 총도 뺏겨 아작을 내버린다. 측백나무 사이로 아름들이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오동나무 열매가 많이 떨어진다. 쥐새끼(60년생)들은 호두로 착각하여 열매를 주어 먹었다. 호두맛도 나고. 땅콩처럼 고소했다. 그런데 약간 비릿하면서 쓴맛도 느꼈다. 독이었다. 복통과 설사 두드러기로 몇 마리 쥐새끼들이 죽을 뻔했다. 친구들 중 한 살 더 먹고 입학한 돼지(59년생)들은 멀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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