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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27. 2024

사랑…

사랑에 대하여 5 : 마무리하며

  일주일 전, 영화 한 편을 봤다. 사랑이라는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본 영화는 아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 이 영화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간단히 말하자면 테니스를 둘러싼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묘한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A와 B는 여자를 만나기 전 한 팀에서 함께 경기를 뛰는 복식 선수이면서 절친한 사이였는데, 여자에게 동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차츰 변곡점을 달린다. 유망하던 테니스 선수였던 여자는 두 남자 중 A와 연인관계가 된다. B는 이 관계를 지켜보다가 둘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한다. 결국 A와 여자는 크게 다투게 되는데, 직후 여자는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테니스 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코치로 전향한다. A와 회복할 수 없는 관계로 돌아선 여자 옆에서 B는 그녀를 위로하고, 이후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둘은 결혼한다. 테니스 선수가 된 B 곁에서 그의 코치이자 아내가 된 여자는 그의 슬럼프 극복을 위해 난이도가 낮은 경기에 참여해 보자고 권유하는데, 그곳에서 B와 A가 대결하게 된다. 


 경기 전날 밤, B가 잠든 것을 확인한 여자는 A를 찾아가 내일 있을 경기에서 져줄 것을 부탁한다. 경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둘은 끝내 그날 밤 예전의 감정을 저버리지 못하고 다시 예전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만다. 다음날 경기에서, 둘은 접전을 펼치게 되는데 승부의 갈림길의 순간 A는 전날밤 여자-상대의 아내-가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경기 도중 일종의 신호를 통해 B에게 알린다. 둘의 점수가 동점인 상황에서, 서로 구슬땀을 흘리며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서 영화는 끝난다.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를 가져온 것 같다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남편의 중요한 경기 전날밤 전남자친구와 불륜을 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여기서 사랑이 느껴질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사랑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이러한 여자의 행동 속에서도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A를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그를 찾아가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 경기 조작을 요청한다. 남편인 B가 슬럼프를 극복하고 그해 있을 큰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그 경기를 꼭 이겨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테니스 선수로서, 코치로서 B의 우승을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러한 동료와 코치와 부부라는 관계의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B의 행복과 미래를 지켜보고 지원해 주고픈 그녀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반면에, 경기 전날 A와의 시간에서도 일종의 동지로서의 사랑의 감정이 느껴졌다. 둘은 ‘테니스 선수’로서의 지점에서는 공유된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여자의 절제된 행동양식은 그녀 내면의 모습을 감추면서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닐까 했는데, A와의 관계에서 여자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보고 꺼내게 되었던 것 같다. 비록 함께할 수는 없는 관계임에도 그 둘은 먼 거리에서 서로의 가슴 깊숙이 있는 어떠한 미묘한 감정의 공유지점을 가지면서 공전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나의 견해와는 달리 여자의 행동에서 남편 B를 향한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영화를 함께 보았던 지인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지점에서 납득하기를 포기한 듯 보였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사랑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은 오직 단 하나의 모순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기 때문이고, 나에게 사랑은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로 변주하며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사랑은 ‘공’ 그 자체다. 비어있음으로 하여금 오히려 모든 것을 담을 수도, 모든 것을 버릴 수도, 모양을 달리할 수도, 크기를 달리할 수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의 형태로 비치는 것이다. 사랑이 꼭 이러해야 한다라거나 이럴 것이라거나 하고 단정 지어 결론 내리고 싶지 않다. 각자의 마음속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빛나거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거나, 혹은 채워져 가기도, 비워져가고 있을 사랑의 총 천연들을 바라보며 글을 마친다.



by.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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