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아부지의 파격적인 제안
가족들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왜 멀쩡한 애를 중학교에 안 보내려고 해?"
"검정고시는 사고 친 애들이 보는 거잖아."
"학교 안 가면 공부는 어떻게 하게?"
"엄만 무섭다, 그냥 학교 가라."
2011년 당시엔 위의 어른들이 했던 말처럼 검정고시에 대한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고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를 안 보낸다니.
이른바 ‘멀쩡했던’ 나를 의무교육인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검정고시를 시키겠다는 우리 아부지의 의견에 기꺼이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한 명이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물론 아직 10년 하고도 조금 더 살았던 어린 내가 엄청난 뜻을 가지고 동의했던 건 아니었다.
열네 살의 나는, 아니 거의 대다수의 열네 살들이 그렇듯 공부보단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이 좋았다.
춤추는 것도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을 실천했다.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은 물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는 나의 단독 콘서트 무대였다. (가끔 엄마가 게스트로 나와서 주인공 못지않은 관심을 받기도 한다)
몇백 명 규모의 큰 축제의 장기자랑에 나가 막춤을 추고 20kg 쌀을 타오기도 했다. 축제 진행자 개그맨 아저씨가 용돈도 주셨다.
기타, 드럼, 사물놀이 그리고 DSLR로 사진 찍는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냥 공부 빼고 다 좋아했고 다 하고 싶었다.
열네 살의 나에게 이 세상은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내게 이런 세상을 열어준 사람들은 최고의 엄마, 아부지, 삼촌이었다.
'하고 싶다'라는 연료 없는 로켓에 '해 봐'라는 최고의 연료를 채워주셨던 분들이다.
‘김아현’ 로켓에는 공부 연료 외에 다른 연료가 필요하다는 걸 잘 아셨다.
빵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와도 아무 상관없다고,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늘 말해주셨다.
그런데 아부지에 따르면, 중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하느라 내가 좋아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진다고 하지를 않던가!
아니, 공부가 뭐라고!
중학교에 가면 기타 칠 시간이 없어진다고? 사진 찍으러 갈 시간도 없어진다고?
DSLR 사 줄 테니까 중학교 안 가지 않을래?
아부지랑 공부하면서 놀러 다니자.
놀러 다니면서 공부하자가 아닌
공부하면서 놀러 다니자. 강조는 "놀러 다니자"에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슬픔에, 그리고 DSLR에 빠져있던 예비 중학생인 나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중학교에 가는 대신 나의 ‘베프’인 아부지와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강조대로 공부하면서 놀러 다니는 것이.
그때부터 당시 나만 했을 법한 밸런스 게임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가기 (but,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못 함)
vs. 최신형 DSLR을 받고 아부지랑 공부하면서 놀러 다니기 (but,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 생활 못 함 & 성질 급한 아부지랑 공부해야 함)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터라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얼마나 크게 중요한지는 솔직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확실한 건 몇 가지 있었다.
하나, 공부를 잘하는 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
둘, 내가 잘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공부만은 아니라는 것.
셋, 아무도 해 보지 않은 것들을 해 보고 싶은 모험심이 크다는 것.
조금 더 생생하게 상상해보기로 했다.
중학교에 갔다.
난생처음 교복이란 걸 입고 조금은 어려워진 수업시간에 열심히 수업을 듣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공부하기 싫다.
잠깐의 졸음으로 보충한 체력이 쉬는 시간에는 보란 듯이 살아난다.
친구들과 누구보다 활기차게 놀고 떠든다.
아싸! 점심시간 10분 전이다!
제일 기다렸던 하굣길엔 친구들과 500원짜리 종이컵 떡볶이를 사 먹는다.
학교에서 에너지를 많이 썼는지 기타를 치기엔 조금 피곤하다.
방과 후 수업 때문에 드럼 학원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다른 도시에 놀러 가서 DSLR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숙제 때문에 갈 시간이 없다.
대충 그려졌다.
그럼 이제 다른 쪽을 떠올려보자.
갖고 싶었던 최신형 DSLR을 받았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일단 정말 신이 난다.
아부지랑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성질 급한 아부지가 수학에 형편없는 나를 답답해한다.
말도 많고 목소리까지 큰 아부지에게 혼난다. (수학 시간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남들보다 2년 일찍 중학교를 졸업한 자격을 얻는다.
앗 근데, 교복이 정말 입어보고 싶었는데 교복도 못 입어보네…?
새로운 친구들을 못 사귄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예전만큼 자주 못 보는 것이 조금 슬프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500원짜리 종이컵 떡볶이를 사 먹지 못 할 거라는 것도 조금 아쉽다.
치열했던 고민과 상상 끝에 일기에서 볼 수 있듯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친구들은 주말에 보면 되지 뭐. 아님 드럼 학원이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만나보자.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고등학교도 남아 있으니 일단 중학교는 건너뛰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교복은 내 맘에 드는 것으로 사입자.
-떡볶이는 혼자 사 먹으러 가면 되지. 아니다, 우리 엄마 떡볶이가 더 맛있다.
-아부지 성질은... 딱히 방법이 없군.
-어쨌든,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아부지랑 공부하면서 놀러 다니는 건 나에게 값진 경험일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의 고민 후 ‘멀쩡했던’ 나와 아부지는 배정된 중학교에 가서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1년 3월, 적잖이 당황하신 중학교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마쳤다.
이제 나는 (적어도 그 당시 내 주변에선)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
그 길이 어떤 길일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고, 우리의 여정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합법적으로(?) 중학교에 다니지 않게 된 뒤부터 아부지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 하는 공부와, 책상을 벗어나 세상을 돌아보는 공부를.
학교에서 규정짓는 공부 이외의 공부를.
아부지가 그리고 내가 원했던 그 공부를.
이렇게 시작된 우리 둘의 홈스쿨링 이야기가 다음 편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