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 Apr 04. 2023

둘째는 빌런? [2]

고무줄놀이 / 울 언니 쌈짱이야!

인싸 작은 언니의 일상복은 파란색 학교 체육복이었다. 이마와 머리의 땀은 일상의 액세서리. 하루종일 뭐가 그리 바쁜지 학교 다녀오면 가방은 방에 던져 놓고 언니는 다시 뛰어 나갔다.


하루는, 나갔던 언니가 일찍 들어온다. 고무줄놀이를 하자고 한다. 갑자기? 나는 고작 초등 1~2학년 정도라 고무줄놀이는 어렵기도 했지만 언니가 가르쳐 준다고 하니 오~ 땡큐~!


마당 한켠의 나무에 고무줄을 묶고 1단부터 시작한다. 2단, 3단, 4단, 5단,, 올라갈 때마다 고무줄도 높이 맨다. 키 작은 나는 발목, 무릎, 허리, 어깨 그리고 까치발로 만세까지 힘들게 맞춰준다. 고추 먹고 맴맴까지 하고 나니 언니가 한번 더 하자고 한다. 다시 발목, 무릎,,,,,, 만세. "언니야, 나는 언제 해?" "한 번만 더하고~"라는 언니말에 팔 아프지만 친절하게 고무줄 높이를 맞춰준다. 1단부터 5단까지 그렇게 열심히 뛰던 언니는 "잠시만~" 하더니 대문밖으로 슝~~ 나가 버린다. "앗! 언니야,,,,,"


그날 언니는 어둑어둑 해질 때쯤 들어왔고 당연히 나는 고무줄놀이를 배우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서 어른이 된 후에 그날 일이 생각나서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듣게 된 진실. 알고 보니,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고무줄놀이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잠시 집에 와서 나를 상대로 연습을 하고 다시 아이들하고 놀았던 것이라고 했다.








원래 자식 세명중 가운데 아이는 가족들 사이에서 가장 서러움도 많이 받고 억울한 일도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는 기대감에 시선을 받고, 막내는 귀엽다고 시선을 받지만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건 둘째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둘째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으니, 바로 사회성. 첫째는 고지식하고 막내는 의존적이라 사회성이 떨어지지만, 둘째는 그런 서럽고 억울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할 테니 사회성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작은 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그의 피가 흘러서 반에서는 오락부장이었으며 언제나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인싸였다.


실수로 화분을 깨트리고는 "네가 했다고 해라"라며 잘못을 뒤집어 씌우거나 우는 동생의 입을 막아 엄마 아빠가 듣지 못하게 하는 악랄한 면이 있는 언니였지만, 학교에서 나를 놀리는 남자 녀석들에 대해 언니에게 하소연을 하면, 바로 다음날 당당히 우리반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큰소리로 "야! xx이 누구야! 나와!"라고 하면 '선배 같은데 이 누나가 왜 나를,,' 하는 생각에 쫄려서 우물쭈물 기어 나오는 그 녀석에게 손가락 두 개로 꼬집기 신공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미술수업이 있던 날 등굣길에는, 책과 미술도구들로 가득 찬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어깨가 아프다며 칭얼대는 동생에게 그만 좀 징징대라며 혼내면서도, 한걸음 뒤에서 등에 맨 책가방 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들어 올려주던 츤데레 언니였다.


어릴  이런 언니가 좋으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어릴 때는 몰랐던  억울함이 고딩 시절에 대폭발 했는지 집에서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튀며 쌍욕을 퍼붓던 일이 일상이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니가 먼저 어른이 되면서 가족을 챙기고 위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언니는 나보다 낫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쌍욕을 날려도 다음날  신발안에 "언니가 미안해"라며 먼저 사과의 쪽지를 넣어 두었던 대인배 언니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있었던 것도 고마웠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언니는 결정 장애가 있는 동생을 위해서 단호한 결정을 내려주기도 하고, 동생이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 시간 두 시간 마다하지 않고 다 들어주기도 하는 인생멘토 같은 존재가 되었다. 비록 과거지사는 많이 잊어서 기억도 못하는 것 같긴 하지만, 가끔씩 나를 강하게 키워주었던 소소한 사건들의 전말을 들려주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도 재밌고 추억거리들이 많아서 늘 대화가 즐겁다.


내 어린 시절을 많은 추억으로 풍요롭게 해 준 우리 집 쌈짱 츤데레 언니야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는 빌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