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1년 가까이 채식을 했다. 대학 수업 때 본, 고기가 내 식탁에 어떻게 올라오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다큐멘터리가 시발점이었다. 당시 인턴 동료들은 비건과 페스코였다. 대외활동 동료들이 지속가능개발에 뜻을 함께 해서 모임을 할 때면 채식 식당에 갔다. 온 세상이 나를 채식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맘때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고기는 안 먹고 생선과 달걀을 먹던 내게, 이 소설은 대학생 때 본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 영상이 내 밥그릇을 물끄러미 보게 했다면, 이 소설은 내 속을 들여다보게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먹고 소화해서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을 구성해가고 있는가.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채식주의자 중에서)
노벨 문학상은 과거 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내 마음, 어쩌면 불편이었고 달리 보면 부당함에 대한 꿈틀거림에 쉽게 나를 바꿀 수 있었던 나. 그때 나는 채식에, 페미니즘에, 교육 평등에 어떻게든 매달려 있고 싶었고, 매달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잘 매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외식 옵션이 줄어들어도, 친구들이 말을 골라 해도, 동료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에 아주 작은 먹물이 투명함을 빼앗듯이, 나 하나로 주변이 물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더 이상 채식을 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며 채식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핑계로. 주변 친구들도 점차 채식에서 멀어져 갔다. 채식뿐 아니라 페미니즘에서도, 평등에서도. 왜 그랬을까. 곰곰이 되짚어보면 시간이 내 위에 자꾸 쌓이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은 변해갔다. 일, 사회경제적 지위, 소득, 불안정한 미래, 왜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건과 사고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물결들.
오히려 그 엄청난 파도에 휩쓸려 내가 그 파도에서 헤엄치지 못하면 익사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남을 도우려는 조급한 열정이 위험할 수 있다. 어설픈 선의로 작은 돈을 기부할 바에야 차라리 돈을 많이 버는 길을 택해라.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을 때 뒤통수를 때린 문장이다. 이 책을 읽던 나는 이 말이 잔인하게 들렸다. 한편 거대한 파도에서 작은 발버둥만 쳐서는 나조차도 구할 수 없다는 걸 배운 나는 새롭게 생각한다. 이 파도에서 내가 나 하나를 건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같이 헤엄치는, 혹은 정말 빠지기 일보 직전인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내게 수영을 배울 수 있는 돈과 시간, 그리고 그걸 알려줄 사람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수영하는 사람들 중 일부만 살 수 있다고 하면, 얘기는 더 급박해진다.
나는 더 빨리 잘 해야 한다.
생존은 사고와 감정을 앞선다. 채식주의자를 읽던 나는 숨쉬는 도중에 그대로 살갗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동생이 4명이나 돼서 집에 가면 도저히 공부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학원 갈 돈은 없어서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장래희망을 바꾸고 진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질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 나는 최근에 얼마나 자주 감정의 전이를 느꼈는가. 그리고 그 전이를 생각하고 소화했는가.
각박함으로 자꾸 무뚝뚝한 인간이 되어간다. 기계와 다를 게 무엇인지. 이성과 불안이 만나면, 이 둘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어떠한 다른 것으로 붙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방향으로 조금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한강 작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장면이 담긴 영화를 보면 정말 너무 힘들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낄 정도로. 그런 그녀가 무서움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방법은 글쓰기였다고 한다. 폭력을 텍스트로 풀어가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어도 해냈고, 그녀는 16권의 책을 펴냈다.
최근에 나는 어떤 콘텐츠를 봤지? 그리고 어떤 감정을 느꼈지? 하면 수많은 보고서, 논문, 뉴스레터, 그리고 쇼츠들이 스쳐간다. 저출산, 스타트업, 저성장시대, 유행하는 드라마 등 별의 별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가 넘쳐난다. 빠르게 읽고 넘겨버려서 뭘 느낄 새가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 본 게 언젠지 아득하다. 결국 되짚어보면 감정을 오롯이 느낀 마지막은 그 다큐멘터리로 가닿는다.
슬픔과 불안, 공포만 못 느끼는 걸까? 아니다. 작가님이 아이를 갖게 된 계기를 말씀하신 인터뷰를 읽었다. 당시 남편의 말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이걸 읽고 수박을 좋아하는, 인구학을 전공하는, 20대 후반의,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결혼을 포기하기도 하는 친구들에 둘러싸인, 나는 개탄했다. 요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결혼하면 돈이 최소 천 단위로 깨지지.’, ‘영유(영어유치원) 안 보내면 안 되는 세상인데, 나는 못 보낼 거 같아.’라는 대화를 나눈다. 그 이야기를 지켜보는 인생 선배들이 ‘아이 덕분에 나는 훨씬 성숙해졌다.’, ‘첫째랑 둘째랑 잘 노는 걸 가만히 보는 그 순간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 없던 그 전의 삶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아무리 쏟아내도 귀에 닿지 않는다. 기쁨과 환희까지 요원해져간다.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서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소년이 온다 중에서)
노벨 문학상을 보면서 내가 그간 목매던 목표들, 놓쳐버린 가치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변해간 나를 본다. 아시아 최초, 여성, 한국인 등을 둘러싼 성과에 연이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걸 구경하며, 조용히 바란다. 텍스트힙 트렌드로 한철 유행으로 지나가지 않길. 매년 선발되는 노벨 문학상이, 혹은 그 가까운 주기와 임팩트를 가진 이슈가 나를 찾아와주길. 숨 가쁘게 살아내는 와중에 잠깐 멈춰서 내 사고와 감정의 근황을 물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