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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리뷰

사랑이 꼭 필요한 순간

드라마 [멜로무비]를 보고

by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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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유치한 사랑 이야기를 찾는다. 어린 시절 돌아간 아빠를 떠올린다. 아빠는 생일 때 없었다. 놀다가도 전화를 받으면 미안한 표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라졌다. 그런 아빠는 영화계에서 일했다. 언젠간 꼭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고 영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그런 아빠를 좇았던 꼬마는 가장 좋아하는 인생 영화가 [러브 액츄얼리]가 될 만큼 유치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게 됐다. 돌아보면 아빠는 잠든 내 머리맡에 제 다리를 기꺼이 내주었다. 아빠는 운전하면서도 잠든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오래 많이 그리워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죽은 게 아니라 먼 여행을 떠나서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온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 엄마다. 나만 알고 싶은 아빠의 모습도 있는 거라고 말하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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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울면서도 형을 찾았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형. 그때였다. 형에게 살 의지가 생긴 순간이었다. 얼마 전 형이 죽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형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형에게 세상은 오롯이 동생뿐이었다. 일하고, 일하고, 일했다. 때로 동생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 동생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고아라고 놀린 애들을 실컷 혼내줬다. 딱 한 번 세상이 내던진 무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던 날이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살고 싶어졌다. 다시 한 번 더 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동생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하나만 하라고 했다. 형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기, 아니면 형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기 위해 노력하기. 일편단심 동생뿐인 형은 그렇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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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자 자신감이었던 그녀가 없는 삶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심지어 가족조차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내 음악을 누구보다 먼저 듣고 무한한 애정을 쏟아준 사람이었다. 몰랐다. 7년을 만나고도 우동을 좋아했다는 걸. 축구는 국내 리그조차 보지 않는다는 걸. 나보다 훨씬 더 오래 그리고 많이 날 좋아해줬다는 걸. 그녀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그녀는 느꼈다. 그녀에게 의존한 만큼 그녀 자신의 빛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 그녀 이름을 안다. 둘 중 하나겠지. 너무 그녀 욕을 했거나 쉴새 없이 그녀를 찾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사랑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게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건 알아요.
누군가 사랑을 잃었을 때.


있을 때는 모른다. 내가 무엇을 갖고 있었는지. 그게 없는 내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옮아터지는 상처로 보여도 그 안에 얼마나 뜨거운 피가 들끓고 있는지. 사랑이 그렇다. 있을 때는 모른다. 없어지면 내 삶은 아주 처참하게 바스러진다. 그 전의 삶이 어땠는지 기억해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다. 분명 그때 내 시점에서는 아름다운 기억이었는데, 다시 꺼내보면 다른 시점이 보인다. 그때 상대는 어떤 고통을 씹어내고 있었는지,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바랐는지, 상대에게 나는 어떤 무게였을지. 없어진 그 다음에야 비로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알게 된다. 그때 나는 얼마나 철없이 해맑았는지. 그 사랑으로 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거대한 밀물이 채워질 때는 그 위에 비치는 윤슬이 찬란하게 빛나곤 했다. 해와 물이 영원히 있으니 이렇게만 오래 이어질 줄 알았다. 어느새 돌아보면 온기와 물은 온데간데 없고 차가운 물기만 남은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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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는 사람이 사랑하는 거예요.


이 문장은 목적어가 없다. 그 빈칸에 들어갈 말은 뭘까. 아빠, 형, 여자친구, 영화. 딸, 동생, 남자친구, 글. 뭐든 들어갈 수 있다. 이 드라마 시리즈의 6화를 볼 때쯤 느꼈다. 이 멜로무비는 연인의 사랑 스토리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다. 내가 의식조차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를 아껴준다.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해준다. 무비에게 영화는 평생 도망치고 싶었지만 사랑해마지 않는 아빠가 남긴 것이기에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겸이에게 형은 빨리 해치우고 싶은 숙제가 아니라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게 이어가고 싶은 삶이었던 것처럼. 시준이에게 주아는 내 주변 모두가 알 수밖에 없는 따라다니는 이름인 것처럼. 그렇게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사랑하는 거예요] 문장의 목적어가 된다.


사랑의 첫 뜻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다. 사랑이 매말라가기 쉬운 삶이다. 과로사로 돌아가신 아빠, 부모님 없이 어린 나이에 동생을 키운 형, 잘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뭐 하나 해내지 못했다며 가족도 외면한 막내, 매일 열심히 하는데도 되는 게 없는 준비생의 삶. 드라마나 현실이나 역경은 홀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의 수렁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그 수렁 밖에 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나 존재를 보자. 내 삶이 지리멸렬할 때,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주겠냐는 물음이 내 아픈 구석을 찌를 때, 바로 내게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다. 기꺼이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고 받자. 차가운 물기만 남은 바닥의 시간을 거쳐, 해가 뜨고 물이 들어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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