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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pr 12. 2024

Essay #15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을 세상에 보내고 있어요.

"하버드 학부생들, 특히 흑인 학생들이 이 수업(하버드 학부 수업인 "빈곤, 인종주의 그리고 건강")을 듣고서 몇 번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 내용은 너무나 좋은데, 수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고 우울해진다고. 어떤 희망들을 함께 이야기해 주면 안 되냐고." 그러고 보니, 그(데이비드 윌리엄스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 사회행동학과 학과장이자 인종차별과 건강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는 언제부터인가 발표를 하는 자리마다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케네디의 말을 인용한다.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울 때마다,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중에서


https://asapscience.tumblr.com/post/150359947118/anyone-here-a-grad-student-or-planning-to


석사 혹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편안한 운동복 차림이나 가벼운 캐주얼이 떠오르네요. 위의 말을 했던 교수님은 항상 정장을 입었다고 해요. 청바지는 물론, 반바지도 자유롭게 입었던 학교 분위기에도 말이죠. 책의 저자이자 그와 같이 수학했던 김승섭 교수님은 추측해요. 그가 종종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미국 사회에서 아무리 대학이라 할지라도 흑인 이민자인 그가 다른 백인 교수들처럼 편히 옷을 입는 것 어렵지 않았을까 라고요. 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더 읽어보실 수 있어요.


얼마 전 읽은 신수정 부사장님의 책, <커넥팅>에서는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에 아주 공감했어요. 첫 연봉이 내 삶의 연봉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한편, 요즘 소득 불평등을 공부하고 사람들은 왜 건강하지 않은지 고민하면서 다른 고민이 생깁니다. 첫 직장과 첫 연봉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얼마 전 들었던 수업에서 불평등inequality와 불형평성inequity의 차이를 배우면서 그 고민은 더 깊어졌어요. 불평등은 그야말로 차이라고 해요. 그 불평등을 두고 "왜 이런 차이가 생겼지?" 라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예를 들어 국가별로 소득이 다르고 건강 수준도 다 다르다고 해볼까요? "왜 이런 차이가 생겼지?" 라는 질문을 두고 소득과 건강 수준 외의 다른 요인들을 다 통일해보는 거예요. 딱 그 두 가지만 놓고 비교해보는 거죠. 그렇게 했는데도 불공평한 차이unfair difference가 있다? 이건 '어떤 조치가 있었다면 공평해질 수 있었는데, 개선할 수 있었는데, 안 해서 생긴 차이다.' 라는 걸 말해요. 이런 차이를 불형평성이라고 합니다.


This image by @restoringracialjustice


이 그림이 보여주듯이 현실은 어떤 사람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반면, 다른 사람은 필요한 것보다 더 적게 얻어요. 따라서 큰 격차가 발생하죠. 이때 평등equality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원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가정을 두죠. 이것은 동등한 대우로 간주돼요. 이와 달리 모든 사람이 각자 필요한 지원을 받을 받으면? 이는 형평성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림에 나오는, 키가 각기 다른 3명 모두 불형평의 원인(펜스)을 해결하면 박스 같은 지원이 없어도 편하게 게임을 볼 수 있어요. 근원적인 장애물을 없애는 거죠.


첫 연봉의 수준. 내가 갈 수 있는 회사. 대학, 회사, 길거리에서 입을 수 있는 옷. '내가 결정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실제로 그런가요? 한 연구(이철승, 정준호, 2018)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근속년수는 더 짧아지고 소득의 상승률은 더 낮아지고 있으며, 세대 내부의 자산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있다고 해요.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 부모님의 교육 수준, 자가 여부, 집의 위치, 주변의 네트워크 등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된 요인들이 어쩌면 나의 첫 직업과 회사, 그 넘어의 삶까지 결정해버리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요


이 고민, 저 고민을 할 때 가장 힘이 되는 말은 의외로 "세상은 너가 원하는 속도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몸 하나 부서져라 노력해도 세상이 안 바뀔 수도 있죠. 나의 사후에 내가 원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많은 위인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요. 이 말이 암울하게 들리지 않고 희망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두 가지다' 라는 걸 또렷하게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에요.


하나는 내 몸을 잘 챙기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는 요즘 직장 내 스트레스가 핫 토픽이라고 해요. 임직원의 복지와 리텐션 이슈가이 이제 스트레스 케어까지 이어집니다. 보건대학원에 다니면서, 그리고 저보다 몇 걸음 앞서서 걸은 선배들의 토크쇼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항상 똑같은 결말을 접합니다. "건강 공부하는 사람이 자기 건강 못 챙기며 안 된다!", "오래 일하고 싶으세요? 멋진 성과를 만들고 싶으세요? 그럼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결국 건강입니다. 내게 가장 확실한 희망은 내 건강인 거죠.


다른 하나는 지금 당면한 일을 하나씩 해가는 겁니다. 먼 미래에 세상을 바꾸는 일도, 내 커리어를 착착 멋지게 쌓아가는 길도 지금 내 일을 잘 해내는 것부터 시작하니까요. 여성 커리어 선배들을 인터뷰할 때 가장 놀란 건 그들의 커리어 성취는 예정된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것처럼 지나고 보니 다 연결되어 있었던 거지 처음부터 완벽한 지도를 가지고 출발한 건 아니었다고요. 영어가 막힐 땐 회의를 다 녹음해서 스크립트를 밤새 달달 외웠고, 해외 유학을 위한 시험을 준비할 때는 잠자는 시간과 지하철 이동 시간까지 쪼개가며 시험을 준비했다고 하시면서요. 그저 한 순간을 충실히 살고 보니 커리어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다는 말. 그 과정을 가만히 듣자면 너무 치열해서 먹먹해집니다. 한편, 김연아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라고 말한 것처럼 그 단단한 열정은 희망에서 피어났다는 걸 느낍니다.



오늘의 결론은 암흑 속에서 별은 더 빛난다는 희망입니다. 물론 애초에 더 성공하기 쉬운 환경에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나는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내 건강을 챙기고 지금 할 일을 해내는 겁니다. '나는 사막 한 가운데, 그것도 아주 삭막한 곳에 있는 오아시스야.' '나는 새까만 밤하늘에 보이는 작은 별 하나야.' 라고요. 취업이 잘 안 될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세상이 왜 나를 이다지도 몰아붙이는지 원망스러울 때 자꾸 생각해보려고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죠. 그럼 이렇게 답해보려고요. 



저는 지금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을 세상에 보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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