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논문이 평생 얼마나 읽힐 것 같아요?
오히려 신문 기사가 훨씬 더 많이 읽혀요!
대학생 때 교수님이 가한 일침이었다. 2-3학년쯤에 전공 선택 수업 중 하나로, 영어로 일목요연하게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있었다. 당시 교수님은 '네가 되고 싶은 커리어(직업)의 면접을 본다고 가정하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핵심 질문에 대해 내 답을 작성해서, 그것을 수업 현장에서 실제 면접 보듯이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그때 옵션이 아주 다양했다. 선생님, 교육 회사 직원, 대학원생 등 여럿이었다. 그 당시 나는 영어 교사 면접을 준비했다. 한편, 내 과제에 대한 피드백보다 더 강하게 뇌리에 박한 말이 있었다. 바로 저 대사였다.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저 말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생을 꿈꾸는 학생이 준비해 온 과제에 대한 피드백이었음을 가정하면, 내 커리어를 부정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 말이 칼처럼 꽂혔을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칼이 그 당시 발표했던 친구에게 꽂혔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칼이 돌고 돌아 지금 내게 깊숙하게 박혔다는 것을.
100장이 넘는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은 누구일까? 논문마다 분량과 범위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학위 논문은 100장을 훌쩍 넘긴다. 그에 반해, 쇼츠와 릴스는 10-15초밖에 안 된다. 카드뉴스에 글자가 한 장에 20자는 될까? 텍스트힙이 무색하게 많은 사람들은 긴 글을 읽지 않는다. 읽기 힘들어한다. 그런데 100장이 넘는, 그것도 전문 용어와 숫자로 점철된 논리 구조에 휩싸인 글을 읽을까? 물론 연구자라면, 특히 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읽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라기보다 초록과 결론 정도, 혹은 필요에 따라 방법론이나 참고문헌 정도를 보고 덮지 않을까.
논리 정연하게 사고한 결과를 시각화한 결과(글, 표, 그림 등)는 마치 술 제조 과정 같다. 한 오크통 가득 찬 원액을 증발시키면 적게는 한 잔, 많게는 한 병 정도 술이 나온다. 아주 고농도의 술! 원액의 에센스가 압축되어 향과 도수로 구현된 술! 이 독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한편, 시판술은 14-17도 사이로, 도수가 높지 않다. 술에 비추어 보면, 논문은 독주 같다. 독주의 도수를 낮추면 대중서가 되는 게 아닐까.
논문에서 태어난 대중서는 쉽게 쓰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논문에 푹 빠져있다보면 '내 말이 자꾸 어려워진다'는 걸 느낀다. 평균, 비율과 같은 일상에서 쓰는 단어도 다시 한 번 짚어보게 되는 건 물론이고, 지금 내 입 밖으로 나가는 말이 앞뒤가 맞는지 계속 의심하게 된다. 말을 번복하거나 정정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우매함의 봉우리를 향해 열심히 기어올랐더니 절망의 계곡으로 떨어지는 그 길목에 서있어 보니 대중서가 그렇게 대단해보일 수 없다. (참고. 더닝 크루거 효과)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쓸 수 있다는 것은, 내 이야기의 독자가 '대중'이라는 것은, 그만큼 그 분야와 이야기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일종의 '경지'다!
이제는 독자의 수를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생각하기엔 이르다. 지금은 내 글을 누가 읽으며, 그 사람이 설령 1명이라도 그 분에게 적확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고민이 잇다른다. 이 경험이 하나씩 쌓이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내가 독자를 정하고 글을 쓰는 때가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