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피 엔드>, 네오 소라 (2025)
그 투쟁의 이익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태도. 행동하는 소녀의 얼굴에서 ‘전장의 크리스마스’ 시절 사카모토 류이치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문득 감독 자신의 페르소나를 그녀로 설정한 것은 아닌지 하는. 초반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고양이 소리를 내며 경비원을 따돌리는 롱테이크 쇼트와 동아리방에서 첫번째 작은 지진이 일어날 때의 그 사운드의 공백이 좋다. 아무래도 모든 좋은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이 기억에 남는 것 같고, 이 영화도 그렇다. 움직임의 순간 정지가 이마무라 쇼헤이 ‘복수는 나의 것’이 떠올랐다.
2.
<히든>, 미카엘 하네케 (2005)
하네케 영화는 연출을 분석하며 봐도 그 정체를 단정지을 수 없는, 몰입하도록 하는 마력이 있다. 비법이 궁금하다. 진실을 아는 체하지 않고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응시하는 카메라는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조르주가 의심하는 남자의 아들이 그의 직장 엘리베이터를 따라 들어오는 신은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같이 탈듯 말듯 망설이다 불시에 훅! 문의 경계를 넘는데 ‘이게 연출의 힘이구나’ 싶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마치 내가 그 공간에 함께 갇힌 것마냥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하다. ‘불편한 몰입’을 만들어낸다. 돌이켜보면, ‘아무르’, ‘피아니스트’, ‘하얀 리본’ 등 그의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도 이런 심리적 긴장을 경험했었던 기억이 있다.
3.
<로제타>,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1999)
'아들', '자전거 탄 소년'에 이어 '로제타'의 엔딩까지. 이쯤 되면 다르덴 형제를 엔딩 장인이라 불러도 되겠다. 어쩌다 밀가루 포대의 자리에 가스통이. 그마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삶의 무게. 구원이라고 하여 그리 대단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일상 속 작은 구원은 어디에. 인간을 비인간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을 감지하는 윤리의 카메라는 결코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다르덴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따라가며 보여줄 뿐. 우리는 그를 판단할 수 없고, 그저 목격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