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해상도를 높여라!
기획자와 디자이너에게 말하기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
고객의 목소리를 가능한 엄밀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통합하고 설득하기 위해서
개발자에게 요구사항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무실이라는 야전에서 실제로 이러한 결과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질서 정연하게 설계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에 능숙한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들 언어의 해상도가 높다고 말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우리가 만드는 결과물의 질을 반영한다. 맡은 일에 대해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그를 좋은 기획자나 디자이너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구사하는 말의 깊이와 인사이트, 그리고 표현방식을 통해 말하는 이의 사고의 깊이를 유추할 수 있다.
좋은 디자이너일수록 그가 사용하는 어휘의 질과 양이 넓고 깊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수학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 학습 방법은 수학을 공부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어떤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그가 그 개념을 설명하는 데 얼마나 논리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로 알 수 있다.
어느 날 UX 리서처로 일하고 있는 어떤 외계인이 당신의 집을 방문했다고 해보자. 외계인이 신발장 옆에 놓인 야구공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 야구공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야구와 스포츠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2) 이제 스포츠를 정의하고, 여러분이 이에 대해 어떤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스포츠에 참여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3) 스포츠를 설명하기 위해 즐거움이라는 감정의 개념을 정의하고, 여러분의 생각과 개인적인 의견을 설명한다.
야구공은 익숙하고 구체적인 사물이므로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반면 스포츠는 구체적인 활동이지만 형태가 없어 비교적 묘사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개념인 즐거움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전혀 해 보지 않은 외계인에게 공감시키기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점점 더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고자 할수록,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설명을 포기할 순 없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추상적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면 우리의 어휘력과 문장력이 강력해야 한다. 또 넓고 깊은 객관적 사고 능력도 필요하다. 연역적으로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전제 1] 디자이너의 사고 능력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에서 드러난다.
[전제 2] 기획 능력은 디자이너의 사고 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 언어적 해상도가 높은 디자이너가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해상도가 높은 디스플레이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표현한다. 그만큼 보는 이가 이해하기 쉽다. 반면 해상도가 낮은 디스플레이는 대상을 모호하게 표현한다.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벗고서 길거리 간판을 보는 격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해상도가 높은 말은 무엇을 말하는지 뾰족하고 구체적으로 의견을 전달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자 단위로 쪼개 정확하고 세밀하게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논리와 어휘력이 뒷받침되는 사람이며, 동시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반면 자기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은 그가 하는 말의 해상도가 낮다. 그런 말은 계속해서 들어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무엇보다 해상도가 낮은 말의 단점은 말하는 바를 오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해상도가 낮은 말
설명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어휘력이 떨어지며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여러 번 들어도 의미를 오해하기 쉽다.
해상도가 높은 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핵심을 잘 이해한다.
말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어휘력과 문장력이 뒷받침되어 있다.
한 번에 이해하기 쉽다.
좋은 말은 사실에 근거하며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빠르고 시원하게 본인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때, 듣는 이에게 질서 정연하게 근거와 의도를 전달할 뿐 아니라 그들을 설득하고 행동하게 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핵심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상대방에게 가능한 오차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사무실에서 미팅만 한두 번 해 봐도 이것이 딜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오직 언어의 해상도가 높은 사람들만이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서 짧고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커뮤니케이션은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정교하게 말하는 기술의 끝판왕이다. 정말 어렵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감정을 빼고 단순하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이는 별로 좋은 멘트는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미팅에서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며 말했을 때 오히려 오해가 적었다. 이는 아마도 대화 속에서 가식이나 명령조의 느낌이 아닌, 실제 사람을 생각해서 말할 때의 진정성이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단순하게 말하는 것보다 단순하지 않게 이야기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더 고려할 게 많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의도가 더 명료하게 전달되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오히려 많은
경우 원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예민한 사항에 대한 이야기일수록 더 그렇다. 이것이 좋은 리더들이 1 on 1 미팅에 시간을 많이 쏟는 이유다. 스타트업에서는 예민하고도 첨예한 미팅이 자주 일어나는데,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이런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듣는 이를 고려한 세심한 문장들이 발화되어야 한다. 엄청난 언어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나 정말로 감정을 제거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순하고 짧게 말하는 것은 보통은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단순하게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단어들을 세심하게 골라야 한다. 오해할 여지가 있는 말을 오해하지 않고 듣는 것도 정신적인 노동이다. 말하는 이가 충분히 섬세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저런 말을 할 필요도, 상황도 생기지 않는다. 여러분이 기획자나 디자이너라면 테슬러의 법칙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시스템에는 더 줄일 수 없는 일정 수준의 복잡성이 존재하므로, 디자이너나 사용자 중 한쪽이 감당해야 한다.
래리 테슬러(Larry Tesler)
토론 역시 의사소통이라는 시스템의 한 형태다. 따라서 여기에도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일정 수준의 복잡성이 존재한다. 그 복잡성을 처음부터 말하는 이가 부담하느냐, 듣는 이가 부담하느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가능하면 말을 시작한 사람이 복잡성을 부담하는 것이 좋다. 오해하지 않게 설명하는 것은 말을 하는 말하는 이가 할 일이지, 듣는 이에게 부과해도 좋은 노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대한 기술이라고 정의했을 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의사소통하는 사람이 세심하게 사용자를 고려하여 인지적 과부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말하기는 캐치볼과 비슷하다. 받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상대방을 고려해서 잘 던지는 기술도 필요하다. 키가 큰 성인에게는 높이 던져 주고, 어린이에게는 느린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 따라 던지는 방법을 다르게 하지 않으면 공을 계속해서 주고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의 해상도가 높다는 말은 곧 전달하려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떤 말하기 습관이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지 알아보자.
생각을 먼저 정리하지 않고 대화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한번은 1 on 1 미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 생활에 대한 피드백 미팅이었다. 상대방이 본인이 말하는 내용의 요점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말을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지루한 나머지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요점을 정리해 주기를 청하자 미안하다는 듯이 멋쩍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하,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는 있다. 대신에 나는 상대방이 요점을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요점이 불명확한 대화는 듣는 이로 하여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결과적으로 분명 클리어한 의사소통을 위해 미팅을 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가급적이면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이, 듣는 이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백번 양보해서, 만약 생각 정리가 아직 안 되었지만 의견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그런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도 좋다. 그러면 듣는 사람도 상대방의 생각을 같이 정리해 주기 위해 기꺼이 협조할 수 있다. 특히 1 on 1에서는 솔직한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많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 있다. 대신 요점이 명확해야 한다. 다양한 사례를 들고 싶으면 그 사례가 의견을 명확하게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명확한 사례가 아니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명확하지는 않은 사례라고 생각하지만, 이러이러한 점에서 유사하여 이야기하겠노라”라고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것도 기술이다. 그러면 그 시점부터 여러분의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는 상대방의 몫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떤 스탠스에서 말하는지에 대한 상황을 모두 공유했기 때문이다.
예시를 드느라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하는 말에 군소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자. 요점을 정리해서 몇 문장 정도로 끝내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시를 드는 것이 미팅이나 발표에서 필요한 말의 전부다. 여기에 뜬금없이 적절하지 않은 농담을 섞는다던지 몇몇만 이해할 수 있는 제한적인 사례를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을 붙여 가며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듣는 이들의 집중을 흩뜨리고 요점을 흐리는 행위다. 군소리라는 것의 정의가 개인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평소에 말이 너무 많다는 피드백을 듣는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포인트다.
논의를 하다 보면 때론 많이 말하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방도 많이 말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나의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지, 내 의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말하면서 상승하는 흥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혼자 많이 말해도 괜찮다. 토론이라면 상대방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미팅에서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일은 꽤나 성숙한 팀에서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자르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된다.
상대 의견을 듣지 못하므로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서 의사결정하기 어렵다.
말을 자르지 않는 것은 단지 공공선이나 윤리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내 말도 가치가 있지만, 상대의 말도 동등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행위다. 이러한 태도는 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 애자일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라면 특히 더 필요한 마음가짐일 수 있다. 반대로 말을 자르는 것은 많은 경우 상대의 말이 내 말보다 가치 없다는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미팅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재점검하는 것이 대화를 더 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말을 자르는 사람은 본인의 의견을 내는 데 적극적인 성향일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논의에 참여하면 특정 인원들 위주로 미팅이 흘러가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좋은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진다. 팀원들 사이에 조금씩 쌓이는 불만은 덤이다. 상대방이 말을 끝까지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은 분명 성숙한 토론의 기술이다.
반면 말의 해상도가 높은 사람은 이렇게 대화한다.
대화의 맥락을 잘 따라가고, 대화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1 on 1 미팅에서 실무에 대해 피드백을 주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식의 대화를 나누게 될 때가 있다. 처음엔 분명 실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내 정치에 대해 떠들고 있다. 듣다 보면 지금 그래서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의아하게 된다.
실무 피드백과 사내 정치에 대한 문제가 서로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더라도, 분명하게 지금 할 이야기인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서 다음에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인지를 빨리 계산해서 아는 언어에 대한 분석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대화의 콘텍스트를 유지하는 말하기다.
일관성 있게 말하지 못하고 맥락이 계속 바뀌는 경우, 말하는 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듣는 이에게 혼란을 준다. 이는 대부분 앞서 설명한 두서없이 말하기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곤 한다.
흘러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아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디자인이다. 일관성 있게 말하는 사람은 이번 대화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한 의도를 설정하기 때문에 주제가 옆길로 새지 않는다. 다른 맥락의 이야기로 흘러갈 경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요~"하며 대화의 맥락을 유지할 수도 있다.
내 기준만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개발자와 대화할 때, 신규 인력과 대화할 때, 동료와 대화할 때, 부모님과 대화할 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발자에게 힉의 법칙을 근거로 내려진 어떤 UX적 결정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이 법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설명을 곁들이는 것이 (당연하게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 법칙을 얼마만큼 설명할 것인지를 조절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당연히 모를 것으로 추측하고 구구절절 UX 원칙들을 설명하는 것은 지루하다. 뉘앙스에 따라 무시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반면 전혀 설명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결국 상대가 얼마만큼의 이해도가 있는지,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왜 이걸 설명해야 하지?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와 같은 생각은 사람이라면 아주 쉽게 들 수 있다. 하지만 오직 내 기준에서의 이야기는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의 지루한 훈화 말씀이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전문성을 가질수록 터널 시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좁디좁은 내 주변 환경에 익숙해진 나머지 편협한 대화를 하는 게 아닌지 한 번쯤 짚어보면 좋을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말할 때 우리 의도가 더 명확히 전달된다. 또, 듣는 이도 우리가 듣는 이를 고려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상호 신뢰를 만드는 좋은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좋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 들은 내용을 기억하고, 이에 기반해서 대답을 한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에 기반해 대화하는 것에 서툴다. 그들은 상대방의 말을 귀로는 듣고, 고개는 끄덕이면서 전혀 엉뚱한 말을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그 시간에 자기가 말할 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다.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예민하다. 내 말을 듣지 않고 있구나, 싶으면 그냥 입을 다물게 된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자원인 스타트업에서라면 이는 특히 심각한 문제다. 일부 인원들이 의견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침묵하는 분위기는 의견의 흐름을 끊고 고이게 만든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하는 것은 미팅을 진행하는 리더의 역량이다. 이상적으로는 리더가 미팅에서 의견을 덜 내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리더가 커뮤니케이션에 능하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리더가 존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리더의 역량에만 의지해 논의를 흘러가게 두는 것보다,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세밀하게 언어적 감각을 훈련하고 미팅에서 활용하는 것이 팀의 성공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에도 바람직하다.
<그래픽 디자인 사용 설명서>의 저자 아드리안 쇼네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말을 연역적으로 활용하면, 말하는 것을 설계하는 데 관심 없는 디자이너는 좋은 디자이너가 아닐 확률이 높다고 할 수도 있겠다.
디자이너 혹은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책 전체 내용을 하나의 예리한 그래픽 진술로 뽑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도전은 없다. 언어와 아이디어 혹은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 디자이너는 멋진 책 표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적다. 음악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이 훌륭한 음반 재킷을 디자인하는 것처럼 언어를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이 훌륭한 책 표지를 만들어 낸다.
아드리안 쇼네시, <그래픽 디자인 사용 설명서>
언어의 해상도가 높은 디자이너는 뛰어난 기획력과 섬세한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보다 더 높다. 그는 쉬운 어휘를 사용해서 적게 말하고도 정확하게 의도를 설명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며, 동료의 의견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프로덕트에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잘 갈고닦은 말하기 기술은 예술과 학문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를 웅변술 또는 수사학이라고 한다. TV나 유튜브가 없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들이 이러한 말하기 기술을 마치 오늘날 우리가 수학, 영어 학원에 다니듯이 선생을 붙여 갈고닦았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말하기 선생들 중 하나가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의 이해를 높이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기술을 연마할 때, 우리는 더 경쟁력 있는 또 하나의 스킬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