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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Dec 02. 2022

'만수'라는 행운을 만나

세렌디피티 in 거제 #3-2

'누구를 선택하지?'


2번인 나는 어머님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분명 오늘 처음 뵈었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서울에 계신 엄마가 생각나 멤버의 어머님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1번이었던 남자 멤버가 어머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산을 고 싶어 '산'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 친구는 무슨 이유로 어머님을 선택했을까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그럼 나는 누구를 선택하지?'가 더 큰 고민이었다.


남은 여자 멤버는 다섯 명. 나는 소거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난 이틀 동안 그래도 나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한 멤버들을 제외하기 시작했다. 추리고 보니 두 명의 멤버가 남았다. 어머님의 딸인 멤버와는 아직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나마 아주 조금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게 뭐라고.' 크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아무 이야기를 나눈 적 없는 멤버보다는 우선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멤버와 이야기를 더 나누기로 결정했다. (여담이지만, 이날 이 선택으로 훗날 나는 약간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파랗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상큼한 톳을 머금은 김밥을 맛있게 먹으며 이 프로그램을 지원한 이유와 며칠 간의 느낌부터 이전에 갖고 있던 고민 등 때론 가볍고 때론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총디의 의도가 꽤나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들 서로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담아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만수르 투어]의 다음 행선지는 '바람의 언덕'이었다.



거제도의 남부면에 위치한 바람의 언덕은 이름 그대로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었다. 언덕 정상에는 거대한 풍차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거제도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이자 유명한 포토 스팟이다.


우리라고 다를 리 없었다.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과 이국적인 풍차를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11명은 적지 않은 인원이었기에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새라 빠르게 돌아가며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선생님의 지시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어린아이들 같아 웃음을 자아냈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와 옷을 잡고 인생 사진을 남긴 우리들은 '병대도 전망대'로 자리를 옮겼다. 거제도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숨은 명소라는 총디의 설명에 걸맞게 드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이날 둘러본 많은 곳들 중 이곳이 제일 좋았다.


누군가 내게 산과 바다 중 어디를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동해, 서해, 남해 중 어디가 제일 좋냐고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해라고 말해줄 것이다. 잔잔한 남쪽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덩달아 잔잔해지면서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잔잔한 바다 위로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 그러데이션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감격과 감탄이 일어난다.



갑자기 어디선가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 신기해서였을까. 우리보다 앞서 전망대에서 바다를 구경하고 계시던 중년 남성 두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제시에서 운영하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서울, 경기, 충청,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왔다고 밝히자 이내 관심을 보이셨다.



거제도를 둘러보니 어떠냐는 질문부터 거제도에 살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까지 흡사 면접을 방불케 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멤버들이 돌아가며 답을 했고, 답이 이어질수록 중년의 두 분은 우리가 부럽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요즘에는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젊음이 부럽다고 하셨다.


두 분은 친구였는데 거제로 여행을 온 친구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이 부러웠다. 우정을 잘 쌓아온 두 청년이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되어서도 서로가 살고 있는 지역을 찾아 함께 여행을 다니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이런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남해처럼 잔잔하면서도 진한 두 분의 우정을 뒤로하고 [만수르 투어]는 마지막 일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 행선지는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또 다른 명소로 유명한 '근포땅굴'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포진지의 용도로 굴착된 이곳이 지금은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는 것이 참 묘했다.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평일에 방문한 우리는 비교적 여유 있게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멤버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시간이 남아 나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멤버의 어머님께서 다가오셨다. 그렇게 어머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오늘 여행은 어떠셨는지, 우리와 같이 다니시는 게 혹여 불편하진 않으셨는지 여쭈었다. 우리들 덕분에 오늘 하루 20년은 젊어진 것만 같았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저 같은 차를 타고 같이 식사하며 하루의 여행을 함께했을 뿐인데 젊은 에너지를 주어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는 게 과분한 칭찬을 받는 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어머님과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되어 나 또한 즐거웠다는 말씀을 드렸고, 덕분에 모녀 여행을 곁에서 볼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함께 드렸다.


어머님께서는 내일 서울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님께 서울에 올라가면 또 한 번 뵙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으레 하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편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것만 같아 서울에서도 한 번쯤은 더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멤버와 어머님


그러고 보니 총디인 만수의 이름 뜻이 무엇인지는 미처 물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수'는 '오래도록 삶'이라는 뜻을 가진 '만수무강'의 '만수'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본 배들 중에 '만수'라는 이름을 가진 배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때 쓰이는 '만수'의 뜻은 '정한 수효에 가득 참'이라는 뜻일 것이다. 만선을 기대하며 항해를 나가는 배 들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만수의 [만수르 투어]는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여러 갈래의 사람들이 만나 한데 어울리며 즐거움으로 가득 차길 바라는 만수 선장의 바람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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