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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Feb 02. 2023

행복을 찾아서

지금, 여기

하고 싶은 걸 찾고 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예요


어느 유명 학원 강사가 한 말이다.

인생을 살며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고 한(해본)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성공한 것이고 충분히 행복한 것이라는 뜻이다. 인생에 한 번쯤은 열정을 다할 수 있는 무언가를 평생 찾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러며 이 말을 덧붙였다. "그 안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건 다른 문제니 그것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걸 했지만 부를 축적하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온 삶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강사의 이 말은 얼마 전 읽은 MBC 오승훈 아나운서의 '시간의 발현'에 대한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언젠가 삶을 돌아봤을 때 충만했고 행복했고 건강한 삶이었다면, 그리고 그 여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난 행복한 녀석이었어


이십 대 후반, '이거 하고 싶다'라는 걸 처음으로 만났다. 공중파 정확히 MBC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마이크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다.


꼭 '그 자리'는 아니어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동네 공원, 시장 한복판, 경로당, 대학 강의실 등. 페이를 적게 받기도 때론 아예 안 받은 채 마이크를 잡기도 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관객들과 소통하며 행사를 원활히 진행할 때면 만족스러웠다. 즐거웠다.


언젠가 동종 업계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구면이지만 친분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사이의 사람이었다. 그의 입에서 '몸값을 높이고 커리어가 될 만한 더 큰 행사 사회를 봐야지, 왜 돈도 안 되는 그런 걸 하느냐'라는 말이 나왔다. 글로만 읽으면 '당최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의 말이 맞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나는 커리어에 한 줄 채울 수도 없는 행사들을 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가 놓친 것이 있었다. 이익은 꼭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비록 페이는 적을지언정 살아있는 해맑은 웃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했고, 맞잡은 거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일상 속 특별한 경험을 전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나 또한 충만해졌다.


(혹여 걱정은 마시길. 일반 행사들도 해왔다.)


작년 말, 처음 아나운서를 준비했을 때 함께 시작했던 동기들과 10년 만에 다 같이 만났다. 그들 중 아카데미 수료 후 마이크를 잡았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건넨 한마디는 나의 기분을 환기시켜 주었다.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낫네. 그래도 하고 싶었던 걸 쭉 해오고 있잖아."   


처음 아나운서를 꿈꾸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10년 동안, 나는 하고 싶은 걸 해왔다. 어쩌면 미련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를 어떻게 포장해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쌓기만 했고, 플랜 B 같은 건 준비할 생각조차 안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의 지난 10년은 행복했다. 하고 싶은 걸 해왔으니. 이미 그 속에 있었는데, 미처 몰랐다. 행복은 내가 만든 원더랜드나 저 멀리 닿지 않을 어딘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가까이 있었고 이미 행복을 누리고 있었는데, 스스로 '행복하다'라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적어도 '나의 행복'은 그랬다.


성공은 과정이지만 행복은 존재다


일본의 철학자 미키 기요시의 말이다. 그리고 책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문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그의 저서에서 '행복이 존재한다'는 말은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성취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지금, 여기'에 이미 행복이 있는 것이니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그 어느 때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크기나 부피가 없기에 큰 행복 작은 행복이 있을 리 없고,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이니 크고 작음을 정할 수도 없다. 나에게는 큰 행복이 저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저이는 소소하다고 말하는 그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감격스러울 수 있는 것이. 그래서 나는 '행복했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순간순간 정말 행복했기 때문에.


20대 때는 뭐든 시도해 봐라
30대 때는 뭐를 잘하는지 알아내고
40대 때는 잘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고
50대 때는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 마라


얼마 전 소셜 네트워크 바다를 유영하다 본 한 미국 부호는 그가 이십 대일 때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도 살아보니 어머니의 말이 맞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2023년, '한국식 나이 계산'이 달라져 나의 앞자리는 4로 바뀌었다 다시 3으로 바뀔 예정이다. 참 재미나다. 어쩌면 숫자에 불과할 그것인데 한 친구는 울상을 지었다가도 금세 풀어지더란다. 그런데 울상에서 웃상이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삼십 대 안에 있었을 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행복한 녀석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한 발짝 지나 돌아보니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왔다'는 게 보였다.


올해, 나의 주위에 새롭게 펼쳐질 '행복'을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만끽하고 쌓아가 보련다.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라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처럼 내게 주어지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면서 말이다.


설렌다. 그래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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