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것 같아
확실히 봄이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교대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마주친-점심을 먹으러 나온-직장인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후드에 코트를 걸쳤던 나도 버스에서는 제법 더워 코트를 벗고 있었다.
잠시 후 내린다는 문자를 보낸 덕분인지 선배가 마중 나와 있었다. 헤어스타일이 한껏 짧아져서 그런가. 해가 바뀌고 다시 만난 선배는 꽤나 밝아져 있었다.
우리는 선배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여유롭게 샤브를 먹으려 했지만, 내가 타고 온 버스 노선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어져 순댓국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3시에 아이들이 하원한다 말하는 선배. 선배는 이제 영락없는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1년에 몇 번 못 보는 사이들이 으레 그렇듯 근황토크부터 시작했다. 하는 일은 잘 되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등. 발동 걸린 대화는 자연스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순댓국은 대화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나왔다. 양념장, 새우젓, 들깻가루, 청양고추 등. 넣을 수 있는 모든 걸 다 넣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선배는 아이들도 자신을 닮아 소스류를 좋아한다 말했다.
식당을 나와 카페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본격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빛의 속도 급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럴 때는 항상 신기한 게 그때의 추억을 함께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인간의 뇌의 기억력이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작년에 만났던 선배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먹지 않는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선배는 나와 만난 이후, 일을 조금 줄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줄이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업무 시스템이 바뀌었고 업무량을 늘릴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이게 프리랜서의 장점이 아닐까.)
대신 일주일에 1~2번 가던 운동 횟수를 늘렸단다. 선배는 집 근처에서 필라테스를 하고 있었는데 체력을 기를 겸 더 집중했다고 한다. 이십 대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이전보다 몸이 가뿐해진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약을 복용하는 횟수가 자연스레 줄었고 어느 때부턴가 먹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요즘은 어떠냐는 나의 물음에 좋다는 대답이 바로 나왔다. 한층 밝아진 톤과 망설임 없는 대답에서 진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선배와 나는 작년에도 올해도 이십 대 때의 추억을 풀었다. 그런데 추억을 끄집어내는 선배의 반응은 작년과 올해가 달랐다. 작년의 선배는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때의 열정, 그때의 생기, 어린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 등을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추억이라며 '지나고 보니' 즐거웠노라 말하고 있다. 가끔 이렇게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으면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의 고민을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고.
어느새 3시가 가까웠다.
"오늘은 아이들 하원하면 뭐해요?"
무엇을 할 것이냐 물었다. 오늘은 아이들과 인라인을 배우기로 했단다. 작년 말, 아이들과 함께 인라인을 타던 친언니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전부터 인라인을 탔고 자신은 탈 줄 모르니 같이 탄 적이 없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배는 오랜만에 놀러 온 친언니가 아이들과 함께 타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부럽다고 느낀 것이다. 선배는 넘어질까 걱정된다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모습이 한결 좋아 보였다.
버스정류장 앞 신호등에서 선배와 헤어지고는 서울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디저트까지 먹어서였을까.
한결 밝아진 선배를 보아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인라인은 잘 배웠냐며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은 넘어졌고, 아이들은 넘어진 엄마를 보며 박장대소했단다. 그럼에도 즐거웠다며 다음에 타면 더 잘 탈 수 있을 것 같다 말하는 선배.
선배는 그렇게 오늘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또 하나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