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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Jan 07. 2024

탈출

단편소설 작가 Xhill의 첫 스릴러  

여자는 깜깜하고 축축한 방 한가운데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지만 아직 눈을 감은 듯, 사방은 여전히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당황한 여자는 몸부림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다리는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짙푸른 빛이 네모난 공간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이나 구멍 같았다. 빛이 완전히 푸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간은 이른 새벽녘이나 해가 지고 난 이후 같았다.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여자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그녀는 납치당한 것이었다. 여자의 눈이 어둠에 서서히 적응되고 바깥의 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여자의 눈앞에 펼쳐진 쇠 철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인이 갇힌 공간은 결코 좁지는 않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쇠 철장, 그리고 돌로 된 바닥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여자는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틈을 찾거나, 철장을 열기 위해 몸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철장 중심에는 자물쇠로 보이는 듯한 구멍과 장치가 있었으나 열쇠가 없는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걸어왔다. 이런 존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여자는 뒤로 물러났다. 어둠 속 누군가는 점점 철장으로 가까이 다가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복면을 쓰고 있었다. 여자는 이 자가 자신의 납치범임을 직감했다. 납치범은 손에서 여자의 가방과 자켓을 들어 올리며 여자를 조롱하듯이 웃어 보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여자의 지갑과 펜, 화장품 등 유용하게 쓰일 만한 물건들을 집어 들고는 어둠 안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는 이런 기괴한 행동을 하고 난 뒤,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지기 전 여자에게 말을 한마디 했다. "너의 몸은 샅샅이 뒤져서 칼, 지갑, 펜 같은 것은 다 찾아냈다. 이제 너는 여기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야." 납치범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곧 어둠 속에서 전등 빛이 켜지더니, 납치범은 창살이 보이는 자리에서 의자를 놓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울 뿐 아니라 분이 나고 무서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그녀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으며, 바위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창문 구멍으로 손을 뻗어 보기도 했으나 자신의 탈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조용히 하라는 납치범의 고함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쇠창살은 단단할 뿐 아니라 너무 좁아 그 사이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여자는 결국 울음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자신이 처한 곤경은 점차 심해지고, 몸부림칠수록 검은 구렁텅이로 점점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다. 여자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팔로 가슴을 쓰다듬었다. 가슴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여자는 무엇을 느낀 듯, 어떤 생각이 떠오른 듯, 눈을 바짝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납치범이 있는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탈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납치범은 여전히 전등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지만 졸음이 몰려오는 듯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는 정도가 늘어났다. 여자는 그런 납치범을 바라보고는 다시 감금된 공간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앉아 납치범이 잠에 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어 세상은 깜깜해졌고, 납치범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얼굴을 책에 파묻고 잠을 자는 납치범은 쇠창살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여자의 몸에서 물건들을 모두 빼냈지만, 그가 간과한 것 하나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어찌나 작았던지 납치범을 깨우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멈추더니 쇠창살 잠금장치가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열린 틈 사이로 누군가가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납치당한 여자였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있었으며, 손에는 가늘고 기다란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 물체의 끝은 날카로웠다. 여자는 잠을 자는 납치범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납치범의 등 뒤까지 다가온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손에 있던 물체를 들어 올려 눈 깜짝할 사이에 납치범의 목에 찔러 넣었다. 그 물체는 납치범의 목을 정통으로 관통했으며, 곧 피를 쏟아내며 짧고 굵은 비명과 함께 납치범이 바닥에 쓰러졌다. 제대로 된 저항을 하거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는 죽었다. 납치범을 죽인 여자는 벽을 더듬으며 불을 킨 다음, 문이 있는 곳을 찾아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그녀는 이렇게 탈출에 성공했다. 여자가 탈출에 성공하고 떠난 이곳. 죽은 납치범의 목에는 작고 가느다랗지만 긴 철사가 박혀 있었으며, 여자가 열고 나온 자물쇠에는 작은 금속 걸쇠가 걸려 있었다. 여자가 감금되었던 공간의 바닥에는 와이어와 후크를 빼낸 브래지어 하나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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