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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Jun 03. 2024

스위밍 풀 (3)

사이버펑크 느와르 SF 단편소설

Chapter 5. // epilogue

에밀리는 다시 눈을 떴다. 그녀의 얼굴 한쪽에는 대리석 바닥의 차가움이 느껴지고, 다른 한쪽으로는 축축한 습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샤워실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상태였다. 에밀리는 눈동자만을 움직여 주위를 훑어보았다. 샤워실은 여전히 짙은 푸른빛에 깊숙이 잠겨 있었다. 바닥의 물은 다 흘러내려갔지만 축축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그녀의 몸도 마찬가지로 습기를 제외하면 물기는 다 말라 있었다. 피부 사이로 노출된 금속과 부품들은 깨끗하면서도 차가웠다. 바닥 군데군데에는 에밀리가 흘린 파란 액체가 굳어서 작은 조각들이 되어 있었다. 에밀리는 팔을 바닥에 짚은 다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 그녀가 느끼던 졸음과 피곤함은 샤워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간 듯했다. 몸에서 특별한 이상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밀리의 몸은 가벼우면서도 완전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다리를 움직인 다음 발로 바닥을 밟고 일어섰다.




샤워실 그리고 화장실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으며 그 밖은 보이지 않았다. 잠입자와의 사투가 진짜였는지, 그리고 에밀리가 잠에 빠진 동안 밤이 지나가 다시 태양이 떴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에밀리는 샤워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작은 화장실의 문을 열기 직전, 고개를 돌려 화장실 벽면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직 습기와 물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탓인지, 거울에는 안개가 낀 듯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에밀리는 금속 부분들이 드러나지 않은 손을 뻗어서 거울로 가져갔다. 거울 표면을 손으로 문지르자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젖은 머리카락에 초록 눈동자, 짙은 입술과 신비로운 얼굴. 에밀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벌거벗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날카로운 금속 손톱으로 인해 드러난 은색 금속들이 마치 옷을 입거나 꾸민 듯한 모습을 만들었다. 다행히 큰 손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액체가 더 이상 새어 나오지도 않았다. 에밀리는 이제서야 조금 안심한 채, 뒤돌아 화장실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화장실 문 너머의 바깥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이전에는 없었던 짙은 푸른빛이 공기 중에 조금 섞여 있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 밤이 거의 끝나 가는 중이었다. 밤을 지배하던 도시의 야경과 불빛은 점점 사라져 가고, 창밖에서 새벽을 알리는 푸른빛이 들어와 객실 내부로 퍼진 것이었다. 에밀리는 아직 어두운 복도를 천천히 밟으면서 거실, 그리고 수영장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잠입자의 기계 몸통이 눈에 들어왔다. 쓰러져 있는 잠입자 뒤로는 부서진 탁자와 부엌 등이 보였다. 에밀리가 겪은 일은 환상이나 꿈이 아닌 진짜였다. 에밀리는 복도에서 나와 거실 앞에 서서 이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긴 채, 몸을 움직여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날이 뜨기 전 이것들을 치워야만 했다.




망가진 것들을 완전히 고칠 수는 없었지만 잔해들을 치워야만 했다. 날이 밝기 전 그 과정은 척척 진행되었다. 잠입자의 떨어진 머리와 기계 몸통은 그가 숨어 있던 대나무 사이로 넣어 두었다. 몸통을 잡아 끄는 것은 전류가 다 빠지고 나니 이전보다 확실히 어려웠다. 아무리 기계의 힘을 가진 에밀리였지만 전류가 빠지고 나니 무서운 기계 괴물의 몸을 움직이는 데는 힘이 많이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잔해들은 구석에 치워 두고, 부서진 탁자나 함몰된 바닥과 벽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부서진 부분들을 제외하면, 잔해들의 모습은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예전의 모습으로 어느 정도 돌아갔다. 객실 내부를 둘러보던 에밀리의 시선이 거실 탁자에서 어젯밤 두었던 유리잔을 발견했다. 에밀리는 탁자로 걸어가 유리잔에 담긴 액체를 들이켰다. 잔을 비우자 에밀리의 몸에, 특히 노출된 금속과 부품의 부위에서 파란 빛이 돌았다. 이것은 인간의 음료와 기계들의 음료를 합친 것이었다. 에밀리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낸, 자신만이 마시는 그녀만의 음료였다. 이후 에밀리는 부엌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가져와 상처들을 꿰매는 데 사용했다. 금속에 주먹질을 하느라 피부가 닳아 버린 곳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잠입자의 손톱이 가른 부분들은 어렵지 않게 꿰맬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인공 피부를 더 이식해야 하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정리와 치료가 끝나자 에밀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몸으로 행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놓여 있던 속옷들을 찾아내 다시 입었으며, 객실 안쪽에 있는 겉옷을 입으면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떠올리자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호텔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떠오를 터였지만 해가 뜨기 전까지는 오직 그녀만의 시간이었다. 에밀리는 깊은 숨을 내쉬고는 마음의 바다에 떨어진 안정의 물방울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에밀리는 다시 거실을 떠났다. 거실에서 계단을 두 걸음 내려와 수영장에 온 그녀는, 다시 물에 들어가는 대신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그녀는 다시 창가에 다다라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의 도시와 건물들에는 여전히 불빛들이 켜져 있었지만, 한밤중의 야경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불이 꺼진 객실 안을 비추는 것은 밤과 아침 사이에 걸린 희미한 새벽의 색깔이었다. 짙은 푸른색과 회색이 그 색깔이었다. 푸른색과 회색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나뉘어 창밖의 광경을 채웠다. 도시와 건물에 가까운 아래쪽은 푸른색, 하늘로 향하는 위쪽은 회색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래쪽의 도시만을 바라보던 에밀리는 고개를 들어 회색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거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이번에는 마치 나무처럼 보였다.




에밀리는 창, 유리로 된 벽면 앞에 앉았다. 두 손을 뒤로 가져가 수영장에 집어넣자, 피부가 남아 있는 손에는 차가운 아름다움이, 금속이 드러나버린 손에는 약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에밀리는 어젯밤처럼 말없이 수영장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의 회색은 점점 사라지고, 푸른빛은 아래에서 위까지 퍼지면서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에밀리의 시선은 도시도, 하늘도 아닌 그 사이에 걸린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는 지평선이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의 시야를 채우는 것은 점점 짙어지는 푸른색이었다. 그 푸른색은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내려와 빛을 비추지는 못할 터였다. 창밖을 바라보는 에밀리의 눈동자는 초록색으로 빛났다. 인간의 피부와 그 안을 차지한 기계. 그리고 눈과 눈에 연결되는 마음. 그녀는 기계였지만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인간의 영혼을 가진 기계. 어떻게 그녀가 탄생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었지만 그녀는 의문의 해답을 찾아 나서면서도 그 길을 홀로 걸어야 했다.




에밀리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에밀리는 이런 객실, 이런 호텔에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임을 알아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출 직전 새벽의 마지막 푸른빛을 눈을 통해 마음에 담았다. 초록 눈으로 들어온 푸른 아름다움은 그녀의 마음과 결합해 더 커졌다. 오직 인간의 영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다음 그녀는 다시 어두운 복도 안으로 들어가 옷을 챙긴 다음, 객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얼마 후 도시 너머로 태양이 떠올라 호텔 객실에도 빛을 비추었다. 객실 위로 태양이 올라오려면 시간이 더 걸릴 터였다. 수영장의 보라색 물은 아직 찰랑이고 있었다.



THE END -



https://youtu.be/mAWL_bdpXWA?si=UXCzt4nxpGasBD_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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