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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r 03. 2024

내가 아는 공무원들은 다 아프거나 그만뒀다

공직이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

 "어차피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죽거나 다쳤다."


 영화 <타짜>에서 고니가 아귀와의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배 안으로 들어가며 읊조리는 대사다.


 고니에게 화투를 알려준 평경장은 정마담이 보낸 남자에 의해 오른팔이 잘린 채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고, 고니의 파트너인 고광렬은 아귀와의 노름판에서 기술을 쓰다 걸려 역시 오른팔을 크게 다친 채 어두운 배 안에 갇혀 있다.


 가족과도 같은 두 명의 사람을 잃은 고니는 평경장과 고광렬의 복수를 위해 아귀와의 최후의 결전에 임한다.


 요즘 공직 생활을 하다보니 문득 이 영화 속 고니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죽거나 다쳤다. 다행히 내 주변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지만, 영화 속 이 대사를 공무원 조직에 속한 내 상황에 대입해보면 고니가 아닌 내 입에서는 대충 이 정도의 대사가 나올 것 같다.


 "내가 아는 공무원들은 다 아프거나 그만뒀다."


 인원이 한정된 조직에 속해 있다보면 자연스레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게 된다.


 지금까지 나 역시도 두 개의 공무원 조직에서 많다면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가지게 됐는데, 희한하게도 단순히 친한 정도가 아닌 나의 흉금을 다 드러내도 될 정도의 친분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영화 속 고니의 대사처럼 모두 조직 내 악폐습에 고통 받거나,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의 과도한 업무를 떠맡고 고통 받고 괴로워하다가 병휴직을 들어가거나, 아예 면직을 하고 이 조직을 떠나고 있다.


 꼭 젊은 사람들이라고 다 힘들어 하는 것도 아니고 경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다 편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만난 40대 초반의 OO구청 7급 주사님과, 50대 초반의 OO구청 6급 팀장님 둘 모두 이제는 공무원 생활이 지긋지긋 하다면서 그동안 꼼꼼히 세운 명예퇴직 계획을 내게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두 분의 명예퇴직 계획에는 지난 수많은 시간동안 두 분이 얼마나 이 조직에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느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고작 5년차가 조금 넘은 내 개념에서는 저렇게 공무원 생활을 10년, 20년, 30년 한 사람들은 적은 업무량에 조직 내 지위에 만족하며 편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데, 대체 왜 나와 가깝게 지내는 저 분들은 하나 같이 공무원 생활에 진저리를 치고 이 조직을 하루 빨리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참으로 절망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5년동안 내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공무원들을 보며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공무원 조직에서 가장 공격 받기 쉽고, 가장 고통 받고, 가장 괴로워하는 집단은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 업무 처리에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조직에 대한 애정과 조직 내 지위에 대한 욕심이 없어 굳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 할 일만 완벽하게 하면서 퇴근 후의 시간을 간섭 받고 싶지 않아 공무원이 된 나의 성향이 딱 그렇고, 15년에 가까운 경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자신이 일을 도맡아 하는 OO 7급 주사님이 그렇고, 해코지 당할 걸 알면서도 상사로부터 부조리한 지시를 받은 후배 직원을 위해 직속 상사와 대신 싸워주는 OO 6급 팀장님이 그렇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죽었다깨나도 공직에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다.


 공직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 슬픈 고정관념이 점차 확고해져 감을 느낀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공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남에게 피해가 간다고 하더라도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은 온갖 떼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떠넘긴다. 대신 승진에 대한 욕심은 그 누구보다 뜨거워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경쟁에서 승리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 알량한 권력을 그 누구보다도 마음껏, 아낌없이 휘둘러 댄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구태여 더 생각을 오래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대부분의 공무원분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서 조직 내 부조리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 채,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애매한 그 어느 지점쯤에 마음을 두면서 조용히 공직 생활을 이어 나가고 계실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대부분의 공무원분들의 삶처럼 공직 생활을 받아 들이고 이제는 더이상 직장을 옮기지 않은 채 묵묵히 공무원의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보상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꾸 어렵고 힘든 일만 떠넘기는 조직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을 쉬이 가라 앉히기가 어렵기만 하다.


 나를 비롯한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공직에서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방의 어느 해변 도시로 떠나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고니의 마지막 모습처럼, 나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가 버리고만 싶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직장 내에서의 삶에만 몰두 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수많은 공무원분들이여.


 오늘도 화이팅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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