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옹기종기 Aug 28. 2024

밤샘 근무 끝에 돌아온 건 뒷담화뿐

[PART 9]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그렇게 잡초 뽑기와 꽃 심기 행사로 정신 없이 보낸 6월이 지나고 7월로 접어들며 내 공무원 생활은 두 달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행히도 두 달정도 하니 처음엔 어렵기만 했던 청소행정 업무도 어느정도는 손에 익어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미화원분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져 오전 시간엔 미화원분들과 관용차를 타고 나가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오후엔 돌아와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이 꽤나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솔직한 말로 동장, 팀장의 '인성질(?)'만 없으면 공무원 생활도 어느정도는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편안함도 잠시 7월이 되고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겨우 안정을 찾은 나에겐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재난 업무' 때문이었다.


 동사무소 청소 담당에겐 청소 업무와 더불어 보통 재난, 민방위 업무가 따라 붙는다.


 민방위 업무란 말 그대로 해당 동사무소 관할에 거주하는 민방위 대원들의 훈련을 관리하는 것이고, 재난 업무는 집중호우가 내리거나 폭설이 올 때, 직원들의 비상대기 순번을 정하고, 관내 위급 상황 발생 시 출동하여 주민들의 긴급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쉽게 이야기하면 '비가 쏟아지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와이셔츠 바람으로 관용차를 몰고 가 수해가 난 지역에 모래주머니를 배달하고, 골목골목 차량이 다닐 수 있게 꽁꽁 언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일을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공시생 시절 무려 '일반행정직'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대놓고 '육체노동'에 해당하는 일을 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이런 일에 전문화된 인력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설사 공무원이 그 일을 한다 하더라도 경찰이나 소방 쪽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발령을 받고 현장에 나와보니 이 모든 일을 '행정직' 공무원 한 명이 전부 다 처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안타깝게도 내가 청소 담당으로 처음 신규 발령을 받았던 2018년 여름은 예년보다도 훨씬 더 지독하게 비가 많이 내린 한 해였다.


 비가 많이 오든 적게 오든 구청 안전총괄과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직원들의 비상근무소집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 동사무소 직원들의 비상근무 순번은 하루가 멀다하고 쉴 새 없이 돌아왔다.


 그리고 비상 소집이 있을 때마다 나는 '재난 담당'이라는 이유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상 순번과 별개로 매번 동사무소로 달려 나와야만 했다.


 밤을 꼬박 새고도 대체 휴무를 받지 못하고 다음 날 새벽에 또다시 응소하는 날이 7월, 8월이 되어갈수록 점점 더 잦아져 갔다.


 그렇게 너무나도 지친 일상이 계속 되던 날, 나는 함께 비상 근무를 서게 된 민원대 아주머니 주무관에게 나도 모르게 울분이 터져 하소연 하듯 이렇게 물었다.


 "주사님, 비상근무가 원래 이래요?... 비도 안오는데 매번 이렇게 불러만 내는?"


 "지금은 편해진거야. 옛날에는 이렇게 2, 3명 부르는 게 아니라 전 직원 다 불러내고 그랬어."


 "게다가 저는 재난 담당이라고 매번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나오는데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원래도 다 이런 가요?"


 "어머? 무슨 소리야? 자기는 당연히 나와야지. 담당이잖아?"


 "아니, 담당이면 매번 이렇게 나오는 게 당연한 거라고요?"


 "아 그건 난 잘 모르겠고, 아무튼 담당이면 그런 소린 하면 안 되지."


 "......"


 대화를 마친 직후, 나는 꽤나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찝찝한 대화를 마친 다음 날, 졸린 눈을 비비며 오후에 출근을 하니 아니나다를까 나와 어제 함께 비상근무를 선 민원대 아주머니가 팀장과 딱 붙어 나를 쳐다보며 속닥속닥하 는 게 아닌가.


 아마도 어제 비상근무에 불만을 가지고 이야기한 나에 대한 험담을 하는 듯한 눈치였다.


 민원대 아주머니의 악의섞인 뒷담화로 인해 졸지에 나는 '하는 일도 없으면서 불만만 가득한 무개념 신규'되어버린 것이다.


 재난 담당이라고 여름 내내 밤잠을 설쳐가며 집과 동사무소를 오간 신규 직원에 대한 조직의 반응은 격려와 위로가 아닌 보란듯한 뒷담과 무시였.


 가뜩이나 힘든 와중에 조직에 대한 현타와 내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비록 2년 가까이 힘들게 공부해 붙은 공무원이었지만, 내 먼 미래를 위했더라면 이때 바로 그만뒀어야 했는지도 모다.


 (PART 10에서 이어집니다!)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잡초 뽑는 공무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